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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 Feb 18. 2024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2

지구에서 우주로 

들어가면서


퍼스트맨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2018년 작품인「퍼스트맨」은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은 디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전기 영화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달에 간 사건을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기록된 「아폴론 프로젝트」는 그리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동료를 잃기도 해야 했으며, 많은 세금을 투입되는 만큼, 국민들에 질타를 받기도 해야  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묵묵히 견뎌나가는 「닐 암스트롱」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그의 입장에 서기도 하면서 영화 내내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류는 달에 가야 하는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우주로부터 온 인류, 우주에서의 인간을 돌아보며, 인류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세계시민(코즈모폴리턴)」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단순히 지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달로, 은하계를 넘어 우주를 탐험 주장합니다. 지구에서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도서관


인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진보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진보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천천히 한 계단, 계단 오르는 것과 같이 지적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진보의 흐름은 「천문학」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주변으로 돌고 있다고 하는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와 같은 학자들이 활동하던 16세기 즈음에 발견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원전에 활동하던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오직 이성의 힘으로만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변에 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오랫동안 지구가 중심이고,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는 「지구중심설(천동설)」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을까요? 

 

기원후 2세기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활동한 프롤레마이오스가 정리한 「알마게스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마게스트」는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내려온 점성술과 당시의 천문학 자료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지구와 다른 행성과의 움직임을 비교적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알마게스트에서 제시한 우주론은「지구중심설」이었으며, 알마게스트의 천문적 정확성은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알마게스트」는 약 1,200여 년 간, 유럽과 아랍 지역에서 천문학의 교과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알마게스트」는 인류를 미혹한 나쁜 책일까요? 그러한 관점보다, 인류가 형성할 수 있었던 지식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동설이든, 천동설이든「알마게스트」는 많은 사람들은 절기를 이해하고, 자기 지역에 알맞은 농사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며, 학문 분야에서도 수학과 천문학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 한계가 있었으며, 그 안에서 나름의 세계관을 일구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알마게스트

「알마게스트」의 우주론은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며, 점차 균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더불어,  오늘날 우주론에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천문학자가 있는데,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입니다. 


신학을 전공했던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면서도, 태양과 지구, 다른 행성들이 관계에서 신의 섭리, 아름다운 수학적 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세웠던 가설의 이름은「코스모스의 신비」라고 불렀으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말하던 완전 입체인 정다면체로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변을 돌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코스모스의 신비

하지만 아무리 관측을 해도, 케플러의 가설에 맞는 행성 간의 궤도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의 바라던 가설은 틀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케플러는 과학자였으며, 자신의 가설의 실패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관측 결과를 통해서, 자신의 동경과 이상인 가설이 아닌, 행성은 타원 궤도로 돈다는 사실, 「케플러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완전한 원형으로 행성의 궤도가 돈다고 믿었던, 코페르니쿠스의 가설보다 진일보한 발견이었으며, 인류의 우주관을 발전시킨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훗날,「케플러 법칙」은 뉴턴의「만유인력 법칙」에 주요한 아이디어를 주게 된다고 합니다. 


코스모스의 주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대도서관」이라고 생각됩니다. 뉴턴은 한 편지에서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힙니다. 즉, 앞서 프롤레마이오스의「알마게스트」가 있었기에,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이 정립될 수 있었으며, 그 가설을 바탕으로 케플러는「케플러 법칙」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류 지성의 유산이 뉴턴에게 까지 이르러 오늘날「과학적 사고」, 「합리적 이성」이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지성의 발전과정을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인류라는 종의 유아기, 우리의 조상들이 조금은 게으른 듯이 하늘의 별들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던 바로 그 시기에도,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 와서 이오니아의 과학자들의 시대에도, 어디 그뿐인가 현대에 들어와서도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이라는 질문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다. (중략) 우리가 이와 같은 우주적 관점을 갖게 되기까지 우리는 하늘을 보고 머릿속에서 모형을 구축해 보고 그 모형에서 귀결되는 관측 현상들을 예측하고 예측들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예측이 실제와 맞지 않을 경우 그 모형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모형을 다듬어 왔다. 생각해 보라. 과거 태양은 벌겋게 달아오른 돌멩이였고 별들은 천상의 불꽃이었으며 은하수는 밤하늘의 등뼈였다. 이론적 모형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또 파기하는 과정을 뒤돌아보면서,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용기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 「코스모스」중에서




암흑시대


인류는 지성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공동체를 진일보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성, 지식은 오랜 기간 동안 '독점'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권력자들, 종교들이 그러한 태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알마게스트」가 보관되어 있었던「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는 알마게스트를 포함하여, 당시 지식들의 총화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식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던 대도서관은 로마의 황제, 무슬림 정복자들에 의해서 완전하게 소멸됩니다. 그리고「대도서관」이 사라진 이후, 유럽은 지성과 지식의 비곤의 시대,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칼 세이건의 유작인「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앞으로 다가올 암흑시대에 대한 경고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나 손주들 세대의 미국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와 정보 경제 산업에 있을 것이며, 주요 제조업의 대부분이 다른 나라로 넘어갔을 것이고, 뛰어난 기술의 힘은 극소수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고, 대중은 자신의 어젠다를 설정하거나 힘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지식에 기반한 의문조차 제기할 능력을 잃게 되고, 점을 치거나 불안한 마음에 별자리를 알아보면서 우리의 비판적 사고능력이 쇠퇴하고, 자신의 기분에 좋은 것과 진실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치를 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신과 미개한 시대로 되돌아갈 것을 같은 예감이다. 미국인들이 단순해지고 있음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가 서서히 쇠퇴하는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30초짜리 사운드바이트(축약된 문구, 신문이나 방송에서 따기 쓰기 좋은 짧은 문구), 가장 단순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앱), 유사과학과 미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무지에 대한 찬양이 그렇다."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중에서


1994년에 쓰여진 이 책에는, 30년이 지난 오늘날 바라볼 때, 미국 사회 그리고 한국 사회에도 매우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는 예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칼 세이건이 점을 치거나 시간 여행을 다녀와서 앞선 주장을 한 것이 아닐 겁니다.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이 막대기 하나로 우주론을 펼치듯, 칼 세이건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퇴행과 진보의 과정을 예측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코스모스에서는 칼 세이건의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가 소개됩니다. 어렸던 칼 세이건이 도서관의 사서에게 "스타들(stats)"에 관한 책을 빌려달라고 하자, 사서는 연예인들에 관련된 책을 건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간략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지성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 가십거리 등을 소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세태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앞서 살펴본 인류의 지성의 발전, 우주론의 변화, 혹은 개인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중요한 질문과 고민보다는 '스타들'에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죠. 




인류는 왜 우주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제 서두에 다루었던, "인류는 왜 우주로 나아가야 할까요?"「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딛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은 달을 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칼 세이건의「코스모스」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가 우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를 통해서 우리를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 잘 알고자 하는 것, 더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것, 이러한 지성이 우리의 삶, 이제는 더 나아가서 지구와 우주의 관계서의 우리의 역할을 찾아나가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의 이야기를 남기며, 칼 세이건의「코스모스」 2편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중략)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 지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 「코스모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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