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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건 Jan 14. 2023

엄마는 심심하면  소금을 먹으라 하셨지

어렸을 적 엄마와 주고받던 실없는 농담에 대한 추억

요리를 하려고 소금을 집다가 갑자기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 내가 "아~ 심심해"라고 이야기하면 우리 엄마는 항상 "심심하면 소금 먹어"라고 이야기를 하셨었다. 


매사에 그러려니 하는 성질이 강한 나는 엄마의 말에 큰 깊이를 두지 않고 "심심한데 소금을 먹으라고? 소금 알갱이가 많아서 그걸 세면 안 심심하단 뜻인가..."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20대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한 대 맞은 것처럼 심심하면 소금 먹으라는 말의 뜻을 그제야 이해했다. 맛의 '심심'과 기분의 '심심',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엄마의 '하이 조크(High Joke)'였던 것이다. 나는 무슨 보물지도라도 발견한 것 마냥 엄마에게 "아 엄마가 맨날 소금 먹으라던 게 그런 뜻이었어?"라며 반갑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소금 조크를 들어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이유가 금세 생각났다. 첫 번째로 일단 나는 최근에 일에 치여 살고 있어 '심심하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다. 또한 심심함을 느끼더라도 그 감정을 오히려 반가워하고 있다. '심심하다'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그 시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에 누구에게 딱히 '심심하다'라고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적 휴식이 필요해 심심하면 소금 먹을 새도 없이 그 심심함을 누리기 바빴던 것.


그리고 생각난 두 번째 이유. 새삼스럽게도 충격적인 두 번째 이유는 '엄마와 예전만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다를 좋아하는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곧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조잘거리기를 좋아했었는데 세상의 순리인지, 나의 저질 체력 때문인지, 혹은 고향을 떠나 있는 거리적 여건 때문인지 예전의 30분의 1도 엄마에게 조잘거리지 못하고 있다. 고향집에 가도 엄마가 오히려 먼저 와서 말을 거는 편이 되었고 "어려서는 그렇게 잘도 조잘대더니 이제 말도 잘 안 하네"라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안부 전화도 일주일에 5번은 하고, 나는 나름 다른 아들일 거라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놓고 따져보니 나 또한 이렇게도 무뚝뚝한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소금을 집다가 이런 생각에 빠진 나는 과연 엄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엄마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빠에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한 달에 한 번 가던 고향집을 코로나 시국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하는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일단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고향집을 찾아가서, 혹은 전화를 걸어서 엄마에게 아주 오랜만에 "나 너무 심심해"라고 이야기해야겠다. 엄마는 나에게 소금을 먹으라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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