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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1. 2024

사춘기 중학생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1

피자를 만들어봅시다.

기나긴 방학.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집돌이가 된 둘째가 합류하니 엄마는 하루종일 꼼짝달싹 못하고 육아모드입니다. 밥도 밥이지만, 두 아이의 체력과 조물거리는 입을 조용히 시키려면 밖으로 무조건 나가야 하니까요.

물론 밖으로 나가도, 엄마 귀는 두개인데 두 놈 다 종알종알 엄마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쉴새없이 늘어놓다보니, 받아내는 엄마 귀도 지쳐갑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건, 며칠 후면 찾아올 고요한 자유시간의 달콤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이 아니었으면, 하루종일 두 아들램의 쉬지 않는 입(!)을 당해낼 수가 없을 테니까요. 하아....

(얘!사춘기 중학생! 넌 왜이리 질문도 많고 말도 많니! 밖에서는 배시시 웃기만 하고 수줍음 많은 척!! 하믄서 ! 엉?!)


다행히 오늘 저녁, 아빠의 귀가와 함께 엄마의 기나긴 방학기간의 독박 육아도 끝이 났습니다.

연휴의 시작. 이젠 귀가 네 개이니 아이들 입을 하나씩만 담당하면 되니까 말이죠. 하루종일 시끌시끌 그야말로 난리 법석인 우리집이니 아빠의 등장이 너무도 반가운 엄마입니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조용해지네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끊임없는 질문세례가 끝나고 조용해지니, 드디어 엄마의 두 귀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우....


큰 아이의 하루 공부를 끝내고 가까운 박물관에 다녀와서 아이들끼리 부루마불 하는 걸 지켜보다 저녁밥을 먹이고 나니 아빠가 등장합니다.


야호! 해방이다!


다행히 돌아온 아빠에게 인사도 않고 큰 아이가

"아빠! 피자 만들자!"

제 말만 먼저 말하는데도, 덥석 받아무는 아빠를 보니 회사에서 하루종일 지쳤을텐데 아직 기운이 남아있나보네요. 오호...

아빠와 아이들이 빵만드는 시간은 엄마의 달콤한 휴식시간입니다.

조물조물 반죽해서 1시간 동안 발효시킨 후,

끝을 안으로 접어서 댐(?)을 만들어준 후

포크로 쿡쿡 찍어 부폴지 않게 만든 후 취향껏 재료를 올려 오븐에 구워주면 끝!

(간단히 세줄 요약이지만 나름 2시간짜리 레시피입니다. 하하)

도미노, 파파존스 같은 체인점 피자는 안먹는 입짧은 큰 아이. 덕분에 유일하게 먹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또띠아에 만들어먹곤 했는데, 처음으로 피자도우까지 직접 만들었습니다. 짠!
두번째 만든 피자. 어른의 도움 없이 오롯이 큰 아이 혼자 만들었습니다. 부들부들 피자도우는 전문 피자보다 훨씬 맛났답니다. 피클도 수제이니 이제 피자가게에 갈 필요가 없어졌네요.


1시간의 발효 시간에는 학교에 가져갈 자소서도 마무리하고, 동생과 미니 포켓볼을 치면서 아슬아슬하지만 잘 놀기도 합니다.

(자소서 가족 분위기는 '상''중''하'에서 상으로 적은 거 같습니다.

자신의 특징을 '귀요미'로 적어달라는 동생의 요구는 끝끝내 인정 못하겠다며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이 우리 집안 분위기 메이커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지 '막내, 분위기 메이커'라고 시원시원하게 써주네요. 큰 아이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동생의 역할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엄마는 아찔하기만 합니다.)


1시간의 발효시간이 끝나고 성형하는 시간.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밀대로 차례차례 밀어 모양을 만드는 시간. 제법 사이가 좋아진 두 형제 모습을 보니 엄마의 마지막 휴직 목표도 다행히 이루어진 것 같네요.


10여분을 오븐에서 구운 후 맛나게 냠냠 먹는 시간.

살이 지나치게 쪄버린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아빠와 두 형제가 오붓하게 조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합니다.


얼마전 산딸기무스케이크도 큰 아이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도 만들어먹는 최애 간식인데요.

여기에 또 피자까지 직접 만들어 먹으니, 이젠 바깥에서 사먹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작년 딱 요 날, 시골살이에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식빵을 만들고는, 그 뒤로 모닝빵, 카스테라, 스콘, 잼쿠키, 호두파이까지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은 엄두조차 못 내던 케이크에 피자까지 직접 만들어먹게 되네요.

사 먹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훌륭한 피자 한 조각. 꿀에 찍어 먹어도 좋고, 파마산 치즈를 뿌려 먹어도 좋지만, 살이 찐 엄마는 그냥 눈으로만 먹는 걸로....흑...

제빵이 주는 힘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청소년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가족간의 불화를 느낄 새도 없이, 손이 바쁘게 만들면서도, 여가시간도 알차게 보내고, 돈 많이 들지 않는 훌륭한 취미생활이 될 수 있구요.


가족 모두 함께 만들고, 모여서 오물오물 맛나게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도 하다보니 가족 분위기도 절로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급격하게 찌는 살을 보니 쪼~~금 많이 불안하긴 합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맛난 음식은 늘어나니 뱃살도 덩달아 출렁입니다.


그래도 불과 3년 전 우리에게 있을 거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런 행복이, 매일매일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요즘이네요.


사춘기에 진입했고, 목소리도 걸걸하고, 틱처럼 있는 헛기침도 여전히 못 고치고 있지만,

그래도, 사춘기 아이가 엄마 아빠를 대적 상대로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사람, 같이 있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봐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감사하기만 합니다.


자소서에 좋아하는 것을 쓰는 부분에 역사책 읽기, 탐조하기, 자전거 타기, 탁구 치기, 등산, 제빵, 보드게임, 바둑.....등등 이것저것을 빼곡하게 적는걸 보, 아이가 꿈을 잃어버렸던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취미부자가 되었구나. 휴직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 회사 홈페이지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주요부서 높은 직위에 적혀있는 걸 보고 다소 심란했던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다시 저에게 휴직이냐 일이냐를 선택하라 했어도 아마 저는 휴직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3년동안 정작 나를 위해서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힘들 때에도 믿고 응원해줄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 생겼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뿌듯한 오늘인데, 드디어 입학과 함께 진짜진짜 마지막 백수(?)로서의 자유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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