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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랏빛인생 Jul 17. 2022

04. 슬기로운 상견례 생활(3)

한 살 많은 남편의 여동생,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진짜 아무렇지 않으세요?


어젯밤의 그 험한 일을 부모님께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다만 동생에게 조용히 전화를 넣어, 누나 한 번만 도와줘라. 암말 말고 그냥 내일 상견례에 너도 와라. 협박이 섞인 사정 끝에 우리는 8인의 상견례를 할 수 있었다.



일찍이 도착한 우리 가족들은 내가 꾸며놓은 상견례장을 보고 적잖이 놀라워했다. 엄마는 힘들었을 나를 걱정하는 마음 반, 뿌듯한 마음 반인 거처럼 보였는데 가족사진을 찍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편치 않은 내 마음을 감지하지 못한 것을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칼 같은 아버님의 성격처럼 정시에 등장하였다. 오셨다는 전화를 받고 그와 함께 맞으러 내려갔다. 아파트로 함께 올라오는 길에 아버님이 내 손을 붙잡고 "마음고생 많았제?"라고 하셨다. 마치 니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차마 웃는 낯은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누가 누구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데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었다. 나는 이토록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불편한데 어젯밤 그 일이 진짜 아무렇지도 않으시단 말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상견례는 문제없이 시작되었다. 잘 차려진 상견례장을 보고 모두들 놀라고 만족해했다. 양가 어른들은 서로의 자식을 칭찬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아버님은 의외로 자신의 아들이 우리 부모님의 마음에 차지 않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엉뚱한 어머님은 상황에 어울리진 않지만 내가 너무 이쁘고 당신과 잘 맞는 거 같다는 말씀을 반복하셨고, 엄마와 아빠는 겸손하게 호응하며 물 흘러가듯 대화가 이루어졌다.


어머님은 노란색 정장 입으셨는데 손톱은 반짝이고 머릿결은 윤이 났다. 나는 '여동생과 어머님이 함께 예약하셨다던 그 샵이 진짜 다르긴 하네' 딴생각을 하였다. 그러던 중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고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못하니


오빠의 여동생은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첫인사를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내 입장을 많이 헤아려주는 고마운 인물이지만 왜인지 불편하였다. 한 살이 많아 일단 언니라고 부르는데 결혼을 앞두고 보니 호칭이 애매한 사이였다.


어머님은 일전의 첫인사 때부터 그의 여동생에게 나를 언니라고 지칭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님께서 정신이 없으셔서 실수하신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결혼하면 새언니가 되니 미리 언니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한참 전부터 호칭은 바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냥 이름이 '아가'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렴.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무엇이 문제니.


나는 마음이 복잡하였다. 엄마에게는 그 호칭은 너무 남성 중심적이다. 그냥 나이대로 하는 거지 왜 남편의 서열을 따라야 하느냐. 그분은 한 살 어린 나에게 언니라고 하고 싶겠느냐라고 하면서


반대로 오빠를 슬며시 떠보기도 하였다. 아버님 성격상 법도대로 하실 분인데 여동생이 나에게 새언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은 ㅇㅇ씨라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데 결혼하고 나면 어떨 거 같으냐.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니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나이도 내가 어린데 솔직히 언니라고 부르기 싫지 않을까. 서로 말을 높이고 호칭은 ㅇㅇ씨로 이름을 부르는 게 좋을까. 그녀와 나 사이의 호칭에 대해 별의별 생각을 다해본 것이다.


당연한 거 아니야?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 호칭은 일순간에 정리되었다.   상견례 중 모두가 있는 앞에서 아버님이 결혼하면 'ㅇㅇ이는 새언니라고 불러야지?'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동생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이렇게 1초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단호하게 결정될 호칭이었단 말인가. 역시 아버님의 딸답게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아가씨-새언니' 호칭을 받아들이는구나. 왠지 그녀가 한층 멀게 느껴졌다.


내가 호칭 문제로 작은 충격을 받은 것 외에는 큰 일없이 상견례가 끝이 났다. 아버님은 우리 부모님의 겸손한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하셨고, 어머님은 아버지의 인물에 깊은 인상이 남은 듯하셨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드릴 차례였다. 상견례 선물은 보통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준비하거나, 초대한 쪽에서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프리지아와 곶감단지를 양가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우리 부모님께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2개나 내미는 것이 아닌가. 하나는 우리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할머니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엄마, 아빠의 얼굴에 당황, 감사, 송구, 놀람 등이 사르륵 스쳐 지나갔다. 뜻밖의 선물인 데다 특히 할머니 선물까지 있어 아주 크게 놀라신 듯했다. 준비한 선물이 없어 받기만 해야 하는 것이 민망한 듯도 보였지만 엄마, 아빠의 기분은 더없이 흡족해 보였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아버님의 선물은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적중하였다. 맞이도 아닌 데다 노환이 있으셔서 근처 요양원에 모신 할머니시지만,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를 극진히 생각하는데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신 것이기 때문이란다.


상견례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지나온 과정이 무색하게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나를 괴롭게 했지만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점잖게 공식적인 상견례를 마무리해주신 아버님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 밉게 생각해야 할지  복잡한 심경이었다.


다들 돌아가신 후에 상견례 차림만 남은 그의 아파트에서 치킨을 시켜 바닥에서 먹었다. 왠지 그 꾸며진 식탁에서 말고 바닥에서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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