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꿈에 옛날에 겪었던 일들이 그대로 나와서 그때 느꼈던 그 기분을 잠에서 깨고도 하루 내내 느끼게 되는 날이 종종 있다.
나는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오스틴이라는 도시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그날로부터, 나는 그 넓은 땅덩이에 차도 없이 돈도 없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쭈구리(?) 같은 시절을 보냈다.
돈이 너무 없지만 과일은 꼭 먹어야 했기에, 79센트 정도 하는 사과 하나를, 학교 앞 매점에서 매일 사 먹는 것으로 버텼고, 차가 없어서 한국 마트를 들를 수 없으니, 어쩌다 들른 마트에서 김치를 사서 그 통의 국물 바닥 끝까지 물로 헹궈 먹었던 때였다.
텍사스는 인구비율로 보나 뭘로 보나, 백인과 히스패닉의 파워가 비등비등했는데, 교실에서도 백인 친구들, 히스패닉 친구들 그룹이 자리를 따로 잡아 앉았다 (적어도 내가 속했던 그 그룹은 그랬다). 그래서, 나처럼 여기도 저기도 낄 수 없는 인종의 학생은 그 주변 어딘가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인종’의 다름으로 인해 인간이 ‘구분’ 지어짐을 직접 겪고 보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26년간 견고하게 다졌다고 생각했던 자존감, 자신감, 나를 향한 많은 좋은 가치를 쉽게 잃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1) 영어도 잘 안 됐고, (2) 클래스 분위기로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3) 돈도 없고.. 즉, 모든 주변 환경이 복합적으로 너무나 열악했으며, 그런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