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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Jan 10. 2023

이상한 일주일

똥색 경험- 우울한 이야기라 미안해.

손톱을 깎다가 불현듯 옛날 네일가게에서 일하던 어떤 날이 떠올랐다. 


어학연수를 할 때 나는 학생비자를 유지해야 해서 공식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허드렛일을 (?) 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캐쉬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을 여러 가지 했다.  아주 잠깐 (단 1주일) 이었지만, 어학연수를 뉴욕 한복판에서 할 때였는데,  뉴욕 부자동네 네일 가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의 사장은 정말 그야말로 ‘이민 와서 개고생’을 하여 삶을 일궈온 한인 이민 1세대 할머니였는데, 그녀는 자신의 네일가게를 네일 가게라기보다는 네일 가게 왕국(?)처럼 꾸며놓고, 럭셔리 콘셉트로 밀고 나갔다 (순전히 내 기억에).  

그녀는 너무나 올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고용한 모든 직원을 하대했는데, 예를 들면 “너” 로 시작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 “너, 네가 오늘 내 손톱 좀 칠해봐”하며 당당하게 손을 내밀던 통통하던 그 사장님. 지금이라면 ‘내가 어디 술집에 취직 한 거니?’ 라며 부당함을 말했겠지만, 그때는 어려서 판단이 불가능했던 거 같다. 


이상한 나라에는 이상한 손님도 많았다. 한 손님은 “내 손톱 표면이 너무 울퉁불퉁한데, 좀 평평하게 버퍼 해줘, 근데 내 손톱이 너무 얇으니까, 너무 많이 비비면 손톱이 다 까져서 안돼”라고 요구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손톱을 최대한 안 갈되, 최대한 갈아내야 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열 손가락 중 한 손가락이 갑자기 아프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유 이디엇, 스투피드, 내 말(영어)을 알아듣기는 한 거니?”라는 조롱이 섞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날 그 사장도 나와서 나를 한껏 째려보며 손님한테 연신 사과를 했는데, 그날의 나는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나의 존엄성을 갈아먹을까 봐 내 입 밖으로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한마디도 내지 않고, 나를 마중 나온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만나 웃으며 한 수제 햄버거집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어 나오는 원통함에 꽤나 오래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기억을 머릿속에 봉인했는데, 오늘 그 기억이 나면서 마음이 슬펐다.  


살면서 겪는 경험들이 내 인생에 색을 입히는데, 이 경험은 똥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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