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 이야기가 나왔다.
프랑스의 오르탕스 블루(Hortense Vlou)라는 이름의 작가가 쓴 “사막”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4줄짜리 시였다.
워낙 시가 짧으니 전문을 이곳에 바로 적어본다.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원문과 영어 번역본은 총 5줄이지만, 한국에서는 류시화 시인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4줄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짧은 시가 선사하는 강렬한 느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류시화 시인이 이 시를 번역해서 자신의 시집 모음집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않은 것처럼>에 실으면서 한국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또 한국의 인기 드라마 <도깨비>에 김신(공유 분)이 눈밭을 힘겹게 걸으며 발자국을 남기는 장면에서 이 시가 오버랩되면서 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인 오르탕스 블루는 파리 지하철 공사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이 시를 제출해 8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류시화 시인에 따르면, 이 시를 자신의 책에 싣기 위해 힘들게 그녀의 주소를 입수해 연락을 했으나 답장이 없자 프랑스에 사는 친구를 시켜 직접 그녀를 찾아가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처음에 그녀는 시가 완벽하지 않아서 시 게재를 허락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느 부분에서 시가 완벽하지 않는지를 묻자 그녀는 시에서 너무도 외로워(si seul)이라는 부분에서 ‘너무도’가 자신이 느꼈던 외로움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정신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는데, ‘사막’은 정신병원에 있을 당시 쓴 시라고 했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뒷걸음질로 걸어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이라도 보려는 것은 눈물겨운 생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막을 좋아한다. 사막이 주는 공허함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사막의 황량한 풍경은 내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더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사막은 콜로라도의 그레이트 샌듄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은 흩날리는 바람이 만들어낸 예술작품같은 모래의 물결 무늬들이 마치 얼룩말처럼 사열해 있었다. 입술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는 숨막히는 건조함과 강한 바람을 따라 얼굴을 때리는 까끌한 모래의 감촉은 마치 사하라 사막이라도 온 듯한 강렬한 느낌이 전율처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이후로 뉴 멕시코에서 눈처럼 희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하얀 모래 사막인 화이트 샌드 사막,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화씨 12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를 맞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데스 밸리 사막, 유타에서 맞닥뜨린 솔트레이크 소금 사막, 페루를 여행하면서 만난 그림같이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낀 와카치나 사막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사막들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사막을 생명이 없는 죽음의 땅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사막은 그 속에서도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다. 물론 그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월등히 적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그 놀라운 생명의 경이를 사막에서는 수시로 느낄 수가 있다.
블루는 처절하고 절망적이었던 상황 속에서 ‘사막’이라는 시를 작성했고,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녹여낸 그 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얼마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으면 자신의 발자국이라도 보고 위안을 얻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을까. 현대인들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철저히 고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시가 더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사막을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내게 사막은 생명을 잉태한 또다른 삶의 공간이며, 신이 빚어낸 경이의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사막에서 희망을 본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을 힘겹게 걸으며, 나는 삶의 의지를 다진다. 사막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