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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X Jan 19. 2023

괜찮음과 부끄러움

맹자는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참을 수 없는 네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마음, 겸손하고 배려하여 사양하려는 마음,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많은 이들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것이라면 그것을 좋아하고, 부정의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혐오와 비난의 감정을 가지는 것만큼은 확실히 타고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칙이 난무하는 올림픽 경기에 분노를 느끼며, 비극적 참사에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우리나라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량학살이나 전쟁과 독재에 반대하며, 과거의 부정의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부정의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제도를 만든다.

     

타고나는 본성이기에 부정의를 보고 분노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부정의하고 부도덕한 것들에 갖가지 나름의 이유를 들이대며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 또는 ‘이 정도면 부정의까지는 아니고 그나마 괜찮은 것’으로 포장하여 숨기는 것은 생각보다 손쉽게 가능하다. “부자는 자신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고귀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남자의 배려를 받아야 한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너는 내 아들이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야 한다.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낮고 저열하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야 한다.” 따위의 말이 그런 것들이다.  

    

부정의는 왜 존재할까? 아마도 부정의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 또는 집단이 조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 돈과 명예, 권력 등 모든 재화를 각자에게 각자의 온당한 몫으로 나눠 준다는 것이므로, 부정의 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몫을 다른 누군가가 온당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취한다는 것이다. 즉 부정의는 누군가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부정의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부정의를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으로 포장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영속적인 이익을 도모한다. 심지어 그 조작된 ‘괜찮은 것’에 적응하지 않는 자들을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방해가 되는 불안요소로 만들어 배척하는 전략과 구조를 통해 많은 이들을 부정의한 상황 속에 영구적으로 종속시킨다.     


이러니 새로운 용어와 함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프로불편러’ 그리고 ‘진지충(蟲)’의 등장이다. ‘괜찮은 것’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프로불편러로 불린다. 프로불편러는 이런저런 상황에 투덜거리고 불평불만을 제시하여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가끔 정말로 괜찮은 것에 대해서 불평을 제기하여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불평과 문제 제기 그 자체가 마치 잘못된 행위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진지충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진다. 괜찮지 않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 불평을 말하고, 이를 수정하고자 고민하고 과거의 유사한 고민에 대한 현자와 성인들의 해결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들을 혼자 잘난 체하고 고상한 척을 하는 사람이나 쓸데없이 진지한 벌레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금 이러는 것 그리고 그때 그랬던 것 모두 하나도 괜찮지 않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누구 하나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입 한 번 벙긋 못하고, 스스로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속으로 삭이자고 생각하는 수없이 많은 프로억울러들만 늘어나게 된다.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수천 년 동안 쌓이고 이것이 문화가 되어 ‘한(恨)’이 국민의 정서가 될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타인의 부도덕한 행동에 비난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에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잘못된 편견에 빠져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지금껏 괜찮은 척했다면, 조금씩만 부끄러워하자. 불편해하고 투덜거린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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