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다시 읽고, 돌아가서 한번 더 읽고, 잊지 않으려고 여러번 되뇌었다. 어쩐지 그게 해답처럼 느껴졌달까. 손끝에 스치지도 않을 것 같은 막연한 긍정의 말보다 훨씬 위안이 되는 문장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래도 어느 때는, 멀지 않은 곳에 더 깊은 절망이 있을 것 같았고, 그 반대편엔 마침내 가닿을 희망이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더는 절망 쪽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희망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그 둘의 한가운데를 끝도 없이 제자리걸음 했을 뿐이란 생각이다. 똑같은 행동과 똑같은 생각을 여러번 반복하고서야 비로소. 희망과 절망의 중간지점에서, 희망도 절망도 없이, 제 발 아래 닿는 땅을 다져가며 사는 일의 유의미함을 깨닫는 중이다.
그렇게 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대하지 않는 것,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내일은 나아질거야, 좀 있으면 좋아질거야, 우리 애는 아닐거야, 저 사람은 안 그럴거야, 곧 괜찮아질거야, 그 곳은 다를거야, 그 일은 괜찮을거야 등등...' 이런 류의 생각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고그런 모든 일들이 대부분 '그렇구나-'로 받아들여진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실망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내게 안정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니, 최소한 어쩔 수 있는 영역의 것이라도 다스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바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고.)
누군가는 그 정도의 기대와 희망도 없이 어떻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느냐 하겠지만, 나는 다르게 묻고 싶다. 매번 절망을 하면서 어떻게 주저앉지 않고 살아지느냐고.
물론 나도 아주 보통의 사람인지라 기대없이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도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므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좀 더 나은 것들을 기대하기도 하는데,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억누른다.
-아니야 아니야, 하나가 나아지면 하나가 나빠질거야, 다를 거 없어, 다 똑같아...
거의 유일한 내 친구 y는 내게 이런 얘기를 듣고 깊이 공감하면서도 슬퍼했다. 슬픈 일인가? 나는 슬프지 않으려고 하는 일인데... 그래, 하지만 슬프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조금 슬플지언정 나는 그냥, 내가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즐거운 일, 좋은 일은 없어도 되니까 자잘한 것에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견딜만한 영역을 지켜내면서.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