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피곤하고 자고 싶은데 막상 또 밤이 되면 자기 싫은 병에 걸렸다.
졸리고 피곤해서 눈이 빨간데 자기 싫어서 글을 쓴다.
뭔가 주제를 갖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 것도 없다.
이혼 얘기도, 애 키우기 어렵단 얘기도, 일하기 싫단 얘기도, 사는 게 왜이러냐는 얘기도 다 지겹다.
제일 지겨운 건 그런 것 말곤 할 줄 아는 얘기도 없는 나 자신이고.
요즘은 그래서 쓰기보단 읽기를 좀 더 많이 한다.
얼마전엔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고,
지난주말부턴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오드리 로드 얘기까지 읽다 멈춘 후,
어제부턴 오드리 로드의 <자미>를 읽고 있다.
셋 다 너무 좋다. 너무너무 좋다.
혼자 읽고 혼자 '아 너무 좋다-' 하고 덮어버리는 게 아쉬울만큼 좋다.
근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읽는다고,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왠지 좀 쑥스럽다.
가끔 퇴근하면 뭐하냐거나 뭘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나는 늘 "아무것도 안해요." 또는 "특별히 좋아하는 거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뭐랄까. 밤에 글쓰느라 못 잤다고 말할 수 없는 거랑 비슷한 기분이랄까.
남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몇달 전부터 나한테 자꾸 차 마시자고 하는 열여섯살 많은 남자에게 솔직히 얘기해볼까.
"책 좋아하세요? 저는 책 좋아하는데... 록산 게이 어떠세요? 가끔은 글도 써요. 브런치 아세요? 아 저 운동은 싫어하고요. 의지박약에 관리도 하나도 안하고요. 착한 척 친절한 척은 잘하는데 주위에 사람은 없어요."
음. 다시는 나한테 차마시자고 안하려나.
근데 이제 내가 완전히, 밑바닥까지 솔직해 질 수 있는 대상이 있을까.
나는 아마 겁이 많아서 못할 거다.
모든 것에 완전히 솔직해진다는 건 왠지 좀 무서운 일인 것 같다.
내내 후회하게 될 수도 있고 미움받을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고.
대체 그런 게 왜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예전엔. 살면서 언젠가 한번은 완전히 솔직한 나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런 건 이제. 운명의 상대를 기다린다는 말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이런 식으로 점점 매우 현실적이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가는걸까.
'그래도 언젠가 한번은'의 기대를 하나씩 버려가면서.
아. 이제는 자야 네 시간은 자고 일어나 밥하고 출근할 수 있겠지.
참 갈수록 쓰레기같은 글만 발행하는 나다.
이러는 시간에 책을 더 읽거나 잠을 자는 게 더 나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