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고 흐림
지금 내가 글을 남기는 매거진의 제목이
‘내 몸 리모델링 일지’인데,
과연 내 몸이 리모델링이 되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통 리모델링을 하면 업그레이드가 돼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한~~ 참 다운그레이드 된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아침으로 남편이 카레를 해줬다.
남편이 할 수 있는 요리 중에 가장 영양가 있고
간편하고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다.
늦은 아침으로 카레를 먹고, 남편이 아이들과
나들이를 갔다.
미리 신청해 둔 가을 어린이 행사였는데, 해마다
함께 했지만 올 해는 아빠와 아이들만 다녀왔다.
어쩔 수 없으니, 나는 집에서 쉬었다.
간식으로 먹을 것들을 미리 주문했다가 싸줬다.
귤, 에너지바, 훈제메추리알, 우유를 챙겨 보내고,
나 혼자 시간을 보냈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그냥 구운 계란을
하나 먹었다. 이후 귤도 두어 개 더 먹고, 호박즙도
하나 먹었다. 그토록 바라온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이런 상황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혼자만의 시간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마당으로 나가 앉아서 책을 읽다가,
신발을 벗고 맨발을 잔디 위에 올려봤다.
시원하고 쾌적해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고, 남은 카레를 저녁으로
또 먹였다. 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카레를 하거나
짜장을 하면 그 양을 모두 먹을 때까지 반찬
한두 개만 바뀔 뿐 계속 같은 메뉴를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살림을 하면서부터 우리 가족은
매 끼니 다른 음식을 해 먹었다. 연달아 같은 메뉴는
가족들 모두 잘 안 먹어서 보통 딱 한 끼 분량만
요리를 하고 먹고, 매 끼니 새 음식을 해왔다.
그래서 이렇게 연달아 두 번 같은 메뉴를 먹는 일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낯설다.
내 저녁은 바나나 하나와 오트밀크 한 팩.
점심이 부실했나 오트밀크 하나로는 좀 안 차는
느낌이라 바나나도 먹었다. 다행히 초록빛이던
바나나는 많이 익어 먹을만했다.
남편과 나는 연애부터 지금까지 15년째 함께하는데,
이 정도로 안 먹는 내 모습은 처음 보기에
남편이 볼 때마다 놀라워하고 있다.
나는 더위를 먹어도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고,
입덧을 하면서도 소고기 육개장을 찾았었다.
안 먹고 싶냐는 말에,
”그렇게 엄청 먹고 싶진 않지만
먹으려면야 또 먹는데…
스테로이드 먹을 때는 살이 너무 금방 찌니
음식을 덜 먹는 게 맞는 것 같아. “
하고 대답했다.
전엔 ‘초밥, 짜장면, 육회, 닭발, 피자‘이렇게 콕
찝어 먹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요즘엔 특정 메뉴가 먹고 싶은 마음보다
뭔가 맛있는 음식을 왕창 먹고 싶다는 마음만
한 번씩 생긴다.
둘째를 재우고, 첫째와 남편과 셋이 함께
아시안게임을 봤다. 세대교체된 야구팀이 금메달을
따고, 역전승으로 축구도 금메달을 따고, 경기 중간
무릎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해 금메달을 딴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경기까지 모두 함께 응원하며
지켜봤다.
스포츠가 주는 메시지는 세계평화나 인류 화합도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용기’와 ‘응원’이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와 내 가족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의 소울푸드, 닭백숙을 해 줘야겠다.
잘 먹고 씩씩하게 이겨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