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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Nov 29. 2021

<지옥> 당신은 지옥에 간다.

자연재해와 종교의 관계로 살펴본 <지옥>의 세계관

 먼 과거에는 자연재해를 신의 분노라고 여겼다. 자연 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태풍, 지진, 홍수, 화산 폭발 같은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건 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커가면서 점차 재해를 신의 분노라고 여기는 일은 줄어들었다. 발생하는 원리를 알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경감하지는 못했다. 또한 희생당한 이들에게 죄가 있어서 재해가 생겼다고 비난하거나 재해를 피한 이들이 선하게 살아와서 구원받았다고 자위하기 좋기 때문이다.


 드라마 <지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얼굴이 특정한 사람 앞에 나타나 지옥에 갈 날짜를 전한다. 그리고 전한 날짜가 오면 그 사람은 여지없이 끔찍한 방식으로 죽는다. 어디선가 무서운 생김새를 지닌 존재가 나타나고 희생자를 무자비하게 공격을 하고 기묘한 빛을 내뿜어 태운다. 타고 남은 재는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는 물질로 변해 있다. 발생하는 원리를 알 수 없으면서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일, <지옥>에서 인간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자연재해와 가깝다. 날짜를 전해 받은 사람 한 명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물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한 자연재해를 신의 징벌로 규정짓는 건 인간의 몫이다. 원시 인류는 번개를 신으로 모시거나 거대한 태풍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번개와 태풍을 신으로 삼으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신과의 소통을 독점한 사람은 신의 뜻을 지렛대로 삼아 지배 계급으로 도약했다. 자연재해와 과연 소통이 가능할까, 드넓은 바다 어딘가에서 생긴 태풍 신에게 빈다고 해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피지배 계급에게 너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이 분노해서 벌을 받았다고 하면 된다. 얼마나 편리한 일일까.


 정진수 의장(유아인 역)은 이와 같은 심리를 이용해 종교를 창시한다. 거대한 얼굴의 등장을 '고지'라고 정의하고 살해당하는 과정을 '시연'이라고 명명한다. 표현 방식을 선점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정한다. 죄를 지은 자에게 내리는 신의 징벌이라고. 현대 과학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재해를 종교의 틀 안으로 끌어 오고 이를 활용해 사회를 통제한다. 범죄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 권력을 발견하고 지배 계급으로의 도약한다. 고대 사회에서 그러했듯이 자연재해를 신으로 받들면서.


 자연재해를 신으로 받든 이들이 플라톤이 꿈꿨던 '철인'과 같은 존재라면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중립적으로 궁극적인 선으로 나아가는 존재(사실 그러한 철인은 전지전능한 신만큼이나 실현 불가능하고 궁극적인 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모호하지만)가 권력을 갖는다면 세상은 종교와 함께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지옥>에서처럼 권력을 사유화하는 이들은 늘 등장한다. 새 진리회를 새로 접수한 김정칠은 종교적 메시지를 독점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획득한다.



 <지옥>이라는 우화처럼 현실에서도 종교적 메시지를 독점해 권력을 얻은 경우는 많다. 중세 시대에 면죄부를 통해 부를 축적하거나 파면권을 이용해 세속적 권력을 얻어냈다. 근대 이후에도 종교를 이용해 집단을 사유화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대표적으로 인민사원이나 옴진리교). 이처럼 김정칠도 공적으로는 공권력을 활용하고 비공식적으로는 화살촉이라는 단체를 활용한다. 그 과정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힘을 얻기 위해 수단으로써의 종교와 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와 같은 해석에서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신으로 받들고 그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한 인간이 미래에 저지를 죄를 예측해 미리 단죄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신은 그 존재가 미래에 범할 죄를 알고 싹을 자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라면 그 정도 능력이 있을 테니까.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존재도 언젠가 세상을 혼돈케 할 범죄자일 수도 있다.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죽는 게 억울하지 않겠냐고? 신의 뜻이니 따라야겠지. 이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더욱 흥미롭다.


노트1. 서울에 창궐한 좀비를 다룬 <부산행>에 이어 연상호 감독은 기발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자연재해를 활용해 고대 종교에 빗댄 현대판 우화를 만들어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노트2. 자연재해를 신의 분노라고 여기는 시기는 원시 시대나 중세 시대처럼 먼 과거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최근까지도 그렇게 믿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약 60년 전)에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그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난 외부인 때문에 섬의 정령이 분노해서 화산이 폭발했다고 믿고 외부인 출입을 한동안 금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후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관광업이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나서인 2010년 화산 폭발 때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광고했다는 후문이다. 이제는 신의 분노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생각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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