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런 찐수다 10화
오늘은 조금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갈까요? 사람은 정말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존재일까요? 육체가 사라져도 영혼은 어딘가에 남는 걸까요? 죽음과 영혼은 유구한 인류의 고민입니다. 세계 불가사의에도 피라미드, 타지마할 등 죽음에 관한 건출물이 많습니다. 내가 살면서 이룬 것들을 죽음이라는 현상 이후에도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 혹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모두 공감하시잖아요.
죽음 ⦁ 영혼에 대한 고민과 관심은 사후세계를 상상하고, 그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사고의 방향에 따라, 종교마다 믿음에 따라 사후세계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죠. 오늘은 사후세계를 살펴보려 합니다. 지난주가 개요라면 오늘은 본격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구약 성서가 이집트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전 찐수다 녹음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적으로 가까워서인가 했더니, 그런 것도 있지만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하는 내용이 성경에 담겨 있다고 하더라구요?! 구약의 2권 출애굽기가 바로 그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애굽 = 이집트)
구약에는 죽은 자가 가는 곳으로 케베르라는 공간이 등장합니다. 케베르는 무덤⦁구덩이⦁웅덩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기원했는데 기원이 되는 단어의 공통점은 하강 이미지입니다. 요새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돌아갔다, 천국으로 가셨다’와 같은 상승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데 구약에서는 하강 이미지가 쓰이는 게 신기했어요. 케베르는 망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나뉘어서 가는 곳도 아니구요. 그냥 망자가 내려와서 가만히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케베르에서 영혼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멍때리기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되면 지루했을 것 같기도 하구요. 특정한 성격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은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천국과 지옥, 그러니까 뭔가 착한 일을 하면 갈 수 있는 기쁨이 넘치는 천국이라는 개념은 신약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때 기독교적 가르침을 잘 따르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등장하지만, “이렇게 해야 천국을 가, 이렇게 하면 지옥을 가”와 같은 행동과 연결되는 관념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믿어야지만 천국에 간다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식의 이해는 성경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거죠.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한국만의 특징입니다.
J님은 이 현상을 조선 후기 한국에 개신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현상과 연결지어 설명합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대학 교육이나 종교인으로서 교육을 받았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굉장한 엘리트잖아요. 그런 엘리트가 동방에 이름 없는 나라에 와서 선교를 한다? 이건 굉장한 믿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실제로 이분들이 적극적인 성령 운동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네요. 처음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그 적극적인 성향이 한국 기독교 분위기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고 합니다.
카톨릭의 연옥은 죄를 씻는 곳으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중간적인 개념입니다. 자크 르 고프가 쓴 <연옥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연옥의 요소를 셋으로 나눕니다. 망자를 위해 대신 기도하는 곳, 죽고 나서 죄를 씻어서 구원으로 갈 수 있는 곳, 어떤 장소로서의 연옥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가 생각났어요. 이 영화의 중심 장소가 딱 연옥과 같습니다. 이승도 아니고 사후 세계도 아닌, 그 중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거든요. <원더풀 라이프>를 재밌게 본 입장에서, 연옥이 참 반가웠습니다.
‘사후세계의 범위’라고 했을 때 굉장히 간단한 것 같지만, 따져보면 사후세계는 그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우선 사후 세계가 있으려면 개인의 육체랑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남아 어디론가 간다는 세계관이 기본 설정입니다.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면 그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는 선과 악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도 중요하죠. 그러다 보니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건 누가 결정하는가는 질문도 생기죠.
최근에는 디지털 사후 세계도 이슈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디지털에 흔적이 남잖아요. 사람의 영혼은 천국이든 극락이든 어디론가 가는데 디지털 기록은 남아 이 기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까지 논의가 발전되고 있어요.
위에서 사후 세계를 이야기할 때 옮고 그름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것과 연관되는 것이 귀신과 천사의 구분입니다. 귀신과 천사라는 게 결국 영혼의 등급이잖아요.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사후 세계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는 귀신이 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충분한 성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충분히 성장을 했으면 누군가가 인정해서 신선, 천사, 저승 판관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해서 귀신이 되는 거래요. 이 부분에서는 뭔가.. 좀 속상했습니다. 내가 성장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고통받는구나.. 싶어서요. 아니 죽어서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어 괜히 툴툴거리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왜 누구는 귀신이고, 누구는 천사인가?”라는 위의 질문을 이집트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자의 서>에 따라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혼이 이승이나 생전의 기억, 가족에 미련을 가지면 그 순간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곳이 묘지인 거예요. 묘지 주변을 떠돌면서 제사 음식만 먹으면서 지내는데, 그러면 배가 고프잖아요. 그러니까 시체를 뜯어먹게 되고 그런 영혼이 귀신, 유령, 지박력이 된다고 합니다.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어떤 곳에는 사후 세계 중 지옥은 없고 천국만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삶이 너무 힘들어 지옥 같은 삶을 산다는 점입니다. 이런 특징은 자연 환경이 척박한 지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밀림에 사는 피그미족, 시베리아 에스키모 ⦁ 이누이트족이 그 예입니다. 요새 우스갯소리로 현생이 지옥이라는 말 자주 하는데요, 이런 모습이 사후 세계까지 반영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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