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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Nov 25. 2022

손 없는 날을 아시나요?

옛이야기 B-sides



악귀(惡鬼)의 탄생 : 손이 생겨난 유래

‘손 없는 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습이지만, 예전에는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삿날을 잡곤 한다. ‘손’은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을 해코지한다는 악귀를 뜻한다. ‘손 없는 날’은 ‘손’이라는 악귀가 없는 날이다. 따라서 이날에는 무슨 일을 해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믿어 이사·개업·결혼 등 중요 행사를 하는 날로 여겨졌다.

드라마 <손 the guest>에서 ‘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손님’에서 ‘손’, 그리고 ‘손 없는 날’에서 ‘손’이 모두 같은 단어이다. ‘손’은 그 자체로 부정적 의미를 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인간을 해치고 병들게 하는 신이나 귀신을 뜻하는 단어에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손님신’과 ‘손각시’다. 손님신은 천연두나 마마와 같은 전염병을 옮기는 신이고 손각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처녀 귀신이다. 이렇듯 ‘손’은 한국의 풍습과 밀접하게 연관된 신이다.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인간을 괴롭힌다는 ‘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중국술서에서 나타나는 태박살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고 바람과 관련된다는 설이 있으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아주 옛날부터 존재한다고 믿었던 귀신이니 명확한 유래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몰라도 우리 옛이야기에서 손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총 세 편으로 강원도에서 두 편, 경상도에서 한 편이 발견되었다. 세 편 모두 내용이 큰 차이 없이 비슷하다.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주 짧고 해괴한 이야기다.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는 악귀라고 해서 거창한 배경이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손을 대고 잤더니 손을 낳는다는 내용도 어렵고, 친구의 아내를 결과로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힘을 가진 손이 태어났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손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

이야기에서 손을 올리는 행위는 곧 정욕(이성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성인 남녀가 성적 욕망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대가 친구의 아내, 남편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에 따라 아내가 먼저 남편의 친구의 몸에 손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동이 위법은 아니다. 친구 아내에게 흑심을 품었다고 경찰서에 끌려가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도덕적으로 옮지 않은 행동이다.

이야기 속 아내가 낳은 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손은 부도덕한 행동을 저지른 자가 받는 벌이다. 또 추잡한 정욕의 증거물이다. 나아가 양심의 찝찝함이다. 사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집에는 둘만 있었고 밤이라 둘을 본 자도 없다. 그렇지만 괜히 홀로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그 찝찝함. 그 모든 게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 손이다. 이야기에서 손이 사람을 죽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건 우연이 아니다. 부도덕과 추잡과 찝짭의 결과물인데 그 부정적 속성이 강력한 건 당연한 일이다.




공동체를 해치는 욕망은 악(惡)

가톨릭에는 모든 죄의 근원이라는 일곱 가지 죄악이 있다. 이를 7대 죄악, 칠죄종이라 한다.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 이 7대 죄악은 꽤나 유명해서 콘텐츠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브래드피트 주연의 영화 <세븐>,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속 호문클루스 모두 7대 죄악을 모티프로 한다. 일곱 개의 죄악은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언가를 가지거나 탐하는 태도나 마음을 뜻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하는 마음이다.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추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얼마나 큰지, 강한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칫하면 그 욕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른바 과도한 욕망이다.

과도한 욕망은 공동체에 위기를 불러온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지 않고 각자 떨어져 살았다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원하는 모든 행동을 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죄악이 일곱 가지나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죄악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모여 살면 한정된 자원을 나눠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눈앞에 있는 과일을 먹고 싶다고 다 먹어 버리면 남은 사람들이 먹을 과일이 없어진다. 그럼 싸움이 일어나고 공동체가 와해 된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규범을 만들었다. 경계선을 긋는 것이다. 선 안쪽에서는 어떤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채우든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선을 넘는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앞서 말했듯 성인 남녀가 성을 욕망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욕망하는 상대가 친구의 아내, 남편의 친구라면 문제다. 공동체 내부의 싸움을 일으킬 수 있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의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동을 우리는 악(惡)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 지금까지 우리는 손 없는 날을 막연하게 좋은 날로 인식해왔다. 손이 인간을 해친다는데, 그런 손이 없으니까 좋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옛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을 해친다는 손은 부도덕과 추잡한 정욕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추잡한 정욕은 과도한 욕망이고, 이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惡)이다. 손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惡)이면, 반대로 ‘손 없는 날’은 결국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惡)이 없는, 공동체가 안전한 날이 된다.

이사·결혼·개업 등 손 없는 날에 갖는 행사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다. 이사에는 짐을 옮겨야 하기에 가족을 비롯해 외부인이 함께 있고, 결혼에는 신랑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며, 개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면 아주 작은 욕망에도 다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손 없는 날에 행사를 하라는 건, 미연의 사고로 생길 수 있는 혹시 모를 공동체 와해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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