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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Jan 03. 2023

쫌생이 남자의 이야기, <밥 안 먹는 아내(마누라)>

옛이야기 B-sides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쫌생이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돈을 절약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색하다는 느낌을 주는 남자. 아내가 먹는 밥마저 아까워서 밥 적게 먹는 여자를 찾는 남자. (이럴 거면 혼자 살지 왜 결혼을 하려는지 이해되진 않지만) 옛이야기를 공부하며 구질구질한 남자를 꽤 많이 봤지만 오늘 소개할 남자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구질 of 구질, 왕중왕인 남자다. 그에게 맞는 상스러운 수식어를 찾고 싶지만 내 어휘력의 한계로 쪼잔하다구질구질하다쫌생이 정도의 말밖에 떠오르지 않아 슬플 따름이다. 

이야기에 따라 주인공의 설정이 다른 경우가 있어, 두 가지 버전을 그림과 글로 소개한다.




옛날에 한 남자와 밥을 많이 먹는 아내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밥을 많이 먹는 아내가 언제나 마음에 안 들었고, 아내가 얼마나 밥을 많이 먹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일꾼 열 명이 먹을 밥을 해 오라고 하고는 일꾼들이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밥을 먹을 일꾼이 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해 온 밥을 혼자 다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아내를 쫓아 집으로 가 보니, 아내가 콩을 볶아 또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은 밥을 많이 먹는 아내와 살아내다가는 집이 망하겠다는 생각에 아내를 때려죽였다. 남편은 다시 입 작은 아내와 결혼하여 살았지만, 곳간의 쌀은 전보다 더 많이 줄어 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몰래 숨어 보니, 입 작은 아내가 밥을 해서 주먹밥으로 만들어 머리 위의 뚜껑을 열고 먹고 있었다.

                                                                      <밥 안 먹는 아내>, 한국민속문학사전 줄거리 인용




<밥 안 먹는 아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재산을 아끼고 싶던 남자가 밥 적게 먹는 여자를 찾아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괴물이더라” 정도가 된다. 이야기에 따라 남자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기도 하고 총각이기도 하다. 유부남인 경우는 앞서 소개한 줄거리처럼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본처를 내쫓고 or 죽이고(밥을 많이 먹는다며 때려죽인다) 밥 적게 먹는 여자에게 새장가를 들며, 총각인 경우는 처음부터 밥 적게 먹는 여자를 찾는다. 어느 쪽이건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밥 적게 먹는 여자가 괴물인 건 변함이 없다. 

그럼 여자는 어떤 모습의 괴물인가, 여자는 뒤통수에 입이 달려 있다. 얼굴에 달린 입은 아주 작아서 밥을 많이 넣지도 못하는데, 알고 보니 동그랗게 쪽진 머리 밑에 입이 달려서 평소에는 적게 먹다가 아무도 없을 때면 그 입을 열어 밥을 먹는단다. 뒤통수에 달린 입은 크고 먹기도 엄청나게 먹어서 몇십 명이 먹을 분량을 한번에 먹는다. 겉바속촉을 응용하면 겉소속대(겉보기에는 소식인데 알고 보니 대식) 정도가 되려나. 겉보기와 정반대되는 실체를 가진 여자는 남자에게 재앙이고 괴물이 된다. 그것도 남자가 가장 우려하고 싫어하던 속성을 갖춘 괴물. 


실체를 알게 된 남자는 여자를 내쫓는다. 이후로는 이야기에 따라 결말이 여럿이다. 남자는 여자를 내쫓고 쫄딱 망하기도 하고, 그럭저럭 혼자 살기도 하며, 후처의 괴기스러운 모습에 전처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전처와 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쫓겨난 그 괴물 여자는? 남자에게 내쫓긴 이후에는 별다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정체를 들킨 뒤통수에 입 달린 여자가 화가 나 남자를 해치거나 괴롭힌다는 내용은 없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이 서사에서 여자의 역할은 ‘요건 몰랐겠지ㅋㅋㅋ’하며 숨겨 놨던 입을 들키는 것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저 뒤통수에 또 다른 입이 달렸다는 여자가 정말 괴물인가? 싶은 거다. ‘괴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괴상하게 생긴 물체’이니 넓은 범위에서 괴물이 맞긴 하다만 또 그렇게 막 잘못한 건 없지 않나 싶으면서, 뒤통수 맞은 남자보다 뒤통수에 입이 달린 여자를 응원하게 되는 요상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파보기로 했다. 괴물인 듯 괴물 아닌 괴물 같은 여자와, 그런 여자를 응원하고 싶은 내 마음을 말이다. 



그래서 여자가 뭘 잘못했나요?

괴물 같은 여자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되짚어 보니 하나의 질문이 나왔다. 여자가 뭘 잘못했지여자는 뭘 잘못했나. 소식하게 생겨서 대식가인 것, 남자 앞에서 적게 먹는 척 한 것, 남들과 다른 이상한 생김새를 가진 것? 그런 모습을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이야기에서 잘못한 인물은 겉모습과 다른 속내를 가진 여자가 아니라 아내가 먹는 밥을 아까워하는 남자일 텐데. 

만일 남자가 여자가 밥 먹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한다면 그래 모종의 이유로 정이 상대에게 정이 떨어질 수도 있지, 이해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애초부터 식사량이 적은 여자를 찾았다. 자신의 재산과 곡식이 아깝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여자는 가족이 아닌 일꾼에 가깝다. 쉽게 말해서 가성비를 따지는 거다. 나와 결혼할 여자가 적게 먹고 많이 일하면 좋겠다는 못된 갑질 심보. 특히 남자가 유부남이었던 이야기가 이 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 남자는 마치 오늘날의 우리가 전자 제품과 차를 바꾸듯 기존의 아내를 버리고 가성비 좋은 새 아내를 맞이한다. 가성비와 결혼이라, 이 얼마나 모순된 말인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더욱 여자 편을 응원하게 되면서 여자가 가진 괴이한 겉모습에 관심이 간다. 그녀는 어쩌다가 뒤통수에 입을 갖게 된 걸까? 겉과 속이 다르고 숨어서만 밥을 먹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남자의 공포와 괴물그리고 상상력

옛이야기에는 수많은 괴물이 등장한다. 어디 괴물뿐인가, 동물이 말을 하고 저승을 오가며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세상에 사람의 말을 하는 동물이나 뒤통수에 입이 달린 여자가 존재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결혼한 상대가 뒤통수에 입이 달렸을 확률보다 여자가 도둑일 확률이 높다. 뒤통수로 밥을 먹는 사람보다 쌀을 훔쳐 빼돌리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왜 이야기는 현실적인 고민이 아닌 괴물을 등장시킬까. 이야기가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뒤통수에 입 달린 괴물은 남자의 공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공포는 집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며 느끼는 불안과 연결된다. 혹시 상대가 내 재산을 빼앗진 않을까, 나를 해치지 않을까? 싶은 불안과 공포 말이다. 한 번 싹 틔운 불안과 공포는 점점 커지고 갈수록 뒤틀리고 어그러지며 뒤통수에 입이 달린 기괴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투영하여 상대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상대를 괴물로 만들진 않는다.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돌아보고 상대와 대화하고 조율하며 성숙한 관계를 맺는 사람도 많다. 이 이야기에서 기괴한 모습의 괴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주인공 남자가 그만큼 찌질하고 결혼도 가성비를 따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자는 남자 맞춤형 괴물이다. 얼굴의 입은 아주 작아서 참 만족스러운데 정체를 숨기고 있는 괴물. 그녀가 이토록 남자 맞춤형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남자의 공포가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견과 연결하여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이야기의 제목 <밥 안 먹는 색시>가 싫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남자보다 여자의 괴기스러운 모습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들어서다. 만약 나에게 이야기의 제목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아내가 밥 먹는 것도 아까워하는 찌질한 남자> 정도로 바꾸고 싶다.

다른 재밌는 의견도 있어 기사를 공유함.  심조원, <여자의 욕망을 통제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섬뜩한 풍자>



비슷한 모습의 괴물 일본 <후타구치온나>

 이웃나라 일본에도 비슷한 괴물이 있다. ‘후타구치온나다. 후타구치온나는 ‘두 개의 입을 가진 여자’라는 뜻으로 뒤통수에 입이 달린 일본 여자 요괴를 뜻한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뒤통수에 숨겨둔 입을 가졌다는 점에서 <밥 안 먹는 색시> 속 여자와 똑같지만 후타구치온나는 형태의 기괴함을 넘어 사람까지 잡아먹는 진정한 괴물이다.  한국의 이야기와 조금 달라 계모 이야기로 바뀌었지만 비슷한 모습의 괴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재밌다. 

  


옛날 어느 마을에 남자와 딸이 살고 있었다. 남자는 후처를 들였고 곧 후처와의 사이에 딸이 생겼다. 후처는 자신의 딸만 예뻐했고 전처의 딸에게는 밥을 주지 않았다. 전처 딸은 결국 굶어 죽었고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남편이 나무를 하다 잘못하여 후처의 뒤통수를 도끼로 찍었다. 상처가 컸지만 다행히 후처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이후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입술과 같은 모양으로 변하더니 이가 나고 그 안에 혀까지 생겼다. 후처는 상처 때문에 심한 두통을 앓았는데 뒤통수 입안에 음식을 넣어주면 금세 고통이 사라지곤 했다. 후처는 아픔을 잊기 위해 계속 뒤통수 입안에 음식을 넣었고 결국 남편과 아이까지 잡아먹고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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