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픽로그 K Feb 17. 2023

고슴도치 아이의 홀로서기, <고슴도치 한스>

옛이야기 B-side


내 취향은 어두운 편이다. 웬만한 콘텐츠 두루두루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인생작으로 꼽는 것들은 모두 우울하다. 우울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불행하다. 불행한 주인공은 아주 많이 울고, 온갖 사건 사고를 겪고, 결국 죽는다. 죽지 않더라도 힘든 삶을 산다. 그런 인물에게 마음이 갔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내 주변에는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경험이 취향으로 이어졌나?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한다.

내 취향을 알게 된 몇몇 이들은 나를 보고 특이하다 했다. 보기에 생글생글 잘 웃는데 왜 어두운 취향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 부분이 너의 특징이니 더 파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 때문일까, 석사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번쩍, 번개 맞은 듯 불행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말았다. 


불행을 연구해보기로 했으니 우선 불행이란 무엇인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여러 책과 이론을 뒤적이니 불행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라 했다. 불행이 존재하려면 행복이 있어야 한다나.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행복을 파다 보니 선과 악의 개념이 나왔다. 거기서 멈춰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선과 악으로 넘어가 이론을 파고 파다 보니 천사와 악마로 대표되는 귀신, 영혼을 만났다. 결국 나는 온갖 이론에 사로잡혀 길을 잃었고 논문을 완성하지 못해 졸업을 한 학기 미뤄야 했다.

이론에 크게 데이고 이후로 불행을 감히 정의해보겠다는 당한 포부를 접었다. 어디 불행뿐이겠나. 행복, 선, 악과 같은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날린 시간이 아까웠지만 허무하진 않았다. 불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찾은 소중한 이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나긴 나의 취향 설명은 오늘 소개할 이야기와 연관된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머나먼 유럽 독일에서 전해지는 <고슴도치 한스>이다. 한스는 이른바 반인반수이다. 몸 위는 고슴도치이고 몸 아래는 사람이다. 아이를 원했던 농부가 ‘고슴도치라도 좋으니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빌어 태어났는데 안타깝게도 그 생김새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고슴도치인 까닭에 엄마 젖을 먹을 수 없었고, 침대에도 편히 누울 수 없어 난로 앞에 누워 8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뾰족한 가시 때문이었다. 
 


옛날 돈도 재산도 넉넉한 농부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그의 행복에는 조금 모자라는 구석이 있었다. 아내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다른 농부들과 함께 도시에 갈 때면 그들은 그를 놀리면서 왜 아이가 없느냐고 물었다. 자꾸들 그러니까 마침내 화가 났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 말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 고슴도치라도 좋겠어.”     

그러다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몸 위는 고슴도치이고 아래는 사내아이였다. (…) 한스는 가시 때문에 침대에 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는 난로 뒤에 짚을 조금 깔아 놓고 한스를 그 위에 뉘었다. 가시가 찔렀으므로 어머니는 젖을 먹일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한스는 난로 뒤에서 팔 년 동안 누워 지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 짜증이 난 아버지는 아이가 죽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한스는 죽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 어느 날 한스는 수탉에 올라타 돼지들과 나귀들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숲속에 들어간 고슴도치 한스는 수탉과 함께 높은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 앉아 나무들과 돼지들을 지켰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지내고 나니 나귀와 돼지들은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고슴도치 한스는 돼지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돼지들은 또다시 새끼를 쳐서 온 숲이 돼지들로 꽉 찰 지경이었다. 고슴도치 한스는 이제 더는 숲에서 살지 않기로 하고 아버지에게 마을의 우리들을 모두 비워 놓으라고 전갈을 보냈다. 그가 굉장히 많은 돼지 떼를 몰고 갈 터인데, 돼지들을 잡을 생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잡아도 된다고 말이다. 한스가 오래 전에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 고슴도치 한스는 고슴도치 가죽을 벗고 잘생긴 젊은이가 되었다. 그리고 왕국의 공주와 결혼해 왕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난 뒤 그는 아내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가 자기가 그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에게는 아들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하나 있긴 했는데, 가시가 달린 고슴도치 모습으로 태어나 어디론가 먼 세상으로 가버렸다고 말이다. 그가 아들이 바로 자기라고 말하자 늙은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와 함께 그의 나라로 갔다.     

                                                   [고슴도치 한스], <그림 형제 민담집>, 김경연 옮김, 현암사 참고 



한스는 불행한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주인공이다. 분명 그는 당당하고 자기 삶을 잘 살아가는 인물인데, 결말에는 고슴도치 가죽을 벗고 한 나라의 왕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의 이야기가 불행하게 느껴진다. 행복한 결말보다는 자꾸 외로웠던 그의 어린 시절을 곱씹어보게 된다. 고슴도치로 태어나 난로 뒤에서 보냈을 8년의 시간과, 집을 떠나 나무 위에 올라가 가축을 기르며 그가 가졌을 생각 등을 상상하게 된다.

특히 그가 숲에서 보냈을 시간을 상상할 때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한스가 나무 위에서 해가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장면. 석양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빨갛게 물든 한스의 표정이 매우 쓸쓸할 것 같은 느낌. 나무 밑에서 우는 나귀와 돼지 소리가 들리고,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스치지만 왠지 주변에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하면서 그 장면에서 한스가 했을 생각을 상상하게 되는 거다.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를 싫어했다. 고슴도치 모습을 한 아들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스가 집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가장 기뻐했고, 집을 떠나 죽은 줄 알았던 한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기분이 어두워질 정도였다. 한 번도 한스를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그를 아들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한스는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존재를 부정당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몇 번이고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이만큼 컸음을, 난로 뒤에 누워 있던 시절과 다르게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나는 몇 번이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한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본다. 분명 내 손으로 이룬 게 많았음에도 그것 자체로 날 인정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엄마의 인정을 받으려 했던 과거의 모습. 하지만 한스의 아버지처럼 우리 엄마도 내 성장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우리 집의 고슴도치, 아픈 손가락였음으로. 행복한 한스를 불행하게 보는 건 그의 모습에 과거의 나를 투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한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상과는 달리, 한스에게는 가축을 기르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처음 몇 마리에 불과했던 돼지와 나귀를 숲을 가득 채울 정도로 번식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위의 이야기 요약에는 생략했지만, 실제로 한스는 자신이 기른 가축을 발판 삼아 어느 왕국의 왕에게 인정받고,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편견에 사로잡혔던 아버지는 보지 못했던(아마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능력이 한스를 살리고 그가 행복한 결과를 맞도록 이끌었다.

인정 욕구에 가득 차 스스로를 괴롭혔던 20대에서 벗어나 나는 전보다 홀가분한 30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날 홀가분하게 만든 건 그토록 집착했던 엄마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걸어왔던 나의 길과 쌓아 온 능력이었다. 한스는 왕이 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 행복했을까? 내가 왕이 되길 잘했어! 라며 뿌듯했을까? 아마 한스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평가를 벗어난 인물이 되었을 것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쫌생이 남자의 이야기, <밥 안 먹는 아내(마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