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존재들의 굳건한 그들의 역사
없는 층의 하이쎈스 - 김멜라
여러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저녁놀’, ‘나뭇잎이 마르고’, ‘제 꿈 꾸세요’ 등의 작품으로 접했던 김멜라 작가.
통통튀는 도발적 상상력과 재치 넘치는 문장과 구성, 때로는 발칙함이 느껴지는 전개까지 작품들 전부를 거의 흡입하듯 빠져들게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때로는 가벼워 보이고 그저 웃고 재밌게 흘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김멜라 작가의 작품 바탕에 깔려 있는 약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절망적인 순간에도 놓지 않아야 하는 희망에 대한 목소리가 크게 다가와 당분간은 계속 이 작가의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김멜라 작가의 첫 장편인 ‘없는 층의 하이쎈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하이쎈스, 아세로라, 칭퉁’ 등의 이름과 온두라스 음식을 좋아하는 하이쎈스 할머니의 음식 취향, 신고조차 되지 않는 무허가의 남산 건물에 사는 인물들의 공간 등에 속아 처음에는 외국인 노동자 가족(이 또한 내 안에 고착화된 편견일 것이다)의 처연한 생활을 그리는 작품으로 착각도 했었다.
책을 두 번째 읽을 시점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인물들과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역사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첫 독서에서 지레 짐작으로 오독해 버린 나를 부끄럽게 몰아붙이듯 할머니가 겪어 왔던(지금도 겪고 있고, 겪어 나갈), 그리고 대를 이어 딸과, 손자 손녀에 이르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는 삶과 인생의 과정들이 묵직하게 가슴으로 다가왔다.
바로 반세기도 못된 시기까지도 우리 사회는 한창 국가 성장과 경제 사회 개발이라는 방향에 맞춰, 국가 주도적(전체주의적)으로 개인의 인권이나 삶의 질, 자유의 가치 등이 다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당연한 가치이고 누구나 주장하고 누릴 수 있고, 또한 교육의 혜택도 넓어졌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배움 보다는 당장의 먹고 살 길이 중요했던 시기였으리라.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그랬고, 나 또한 어린시절 풍족하지 못했던 생활에 무조건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듯 들으며, 부의 확보와 신분 상승이 삶의 절대 가치인양 보내기도 했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배워야 할 시기에 배움보다는 생존을 위해 몸을 내던지며 자신의 정당한 권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지내오던 한 개인이 국가와 사회에 의해 어떻게 삶이 조작되고 왜곡되어질 수 있는 것인지. 비록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모질고 처참한 심정은 하루하루 그저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으리라.
내 자식들에게는 무식의 대물림을, 가난의 대물림을, 그래서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반박이나 항의조차 못하고 그저 ‘내 탓이오’ 하며 감내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한 희망 한 줄기를 부여잡고 그저 버티고 또 버텼으리라.
책의 전개에도 나오지만 그러한 모진 세월을 견뎌견뎌 억지로 건너왔음에도, 학교 교직원으로 공금횡령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로 사랑하는 아들도 잃고, 딸과는 헤어져 도망다니는 처지의 딸 부부는 물론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동생을 원인도 명확치 않은(그저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 병으로 잃게 되고 자신의 삶마저 포기해 버리고자 하는 손녀까지, 그 지난함과 모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세상과 모든 인간 관계 또한 단절하고 싶었던 ‘아세로라’가 동거하는 할머니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면서, 특히 지난했던 인생의 과정을 알아 가면서(비록 오해에서 시작됐지만), 차츰 차츰 벽을 허물고 소통해가는 과정이, 그리고 도망다니던 딸과 사위가 피하지만 않고 사건의 해결 당사자로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를 배신(그 시절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한 죄책감에 늘 떠나지 못하고 자신만의 사과와 화해의 방식을 준비하고 있는 탕탕탕 아주머니(남산 하숙 주인)의 기다림이, 그 지난했던 세월을 견뎌내게 하는 힘이자 새로운 희망의 기운임을 느껴본다.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일상(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과정과 험난함이 담겨 있는)을 살아오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사람들(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없는 사람’)들의 그 생활을 버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바로 우리 사회를 받치는, 더 나아가 국가와 역사를 성장시키는 그 힘일 것이다.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을 수 없고” 이미 떠난 존재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러한 ‘없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러한 존재들을 다시는 의미없이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없는 존재’들이 손을 잡고 뭉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을 더 넓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이전의 단편들에 비해 책을 덮은 이후 여운이 더욱 깊은 것은 그저 재치있고, 유쾌하고, 발칙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와 일상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말로 하기 힘든 모진 세월을 때론 희망도 삶도 내던져버린 채 모든 순간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견뎌 오며, 그럼에도 살아내 보겠다는, 한번 더 견뎌보겠다는 밝은 활력의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 있어서 일 것이다.
비록 주목받지 못하고 ‘없는 듯’ 살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도 모질고 힘겨워도) 삶 속에서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고, 또 ‘없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을 기억하며 삶을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소설의 시작에 말미에 덧붙일 ‘작가의 말’을 먼저 썼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역시 김멜라 답다’라는 생각과 함께, 더 깊은 감정의 공감과 여운을 가졌던 것은 바로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외갓집에 관한 (누구보다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김멜라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기억이자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야기입니다. (…) 이 글이 제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많은 분의 삶에 빚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살아 있는 저를 움직여 글을 쓰게 합니다. 언젠가 저의 ‘있음’도 ‘없음’이 되겠지요. 그렇게 있음과 없음을 넘나드는 질서와 힘에 의지해 하이센스, 높은 감각을 느껴봅니다.”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