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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Nov 08. 2023

나의 무심함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부르자 - 한정현

 한정현 작가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교코와 교지’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저 일본에 거주하는 (또는 일본의 정서를 지닌) 재일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막연한 거부감이 일었던 작품이 놀랍게도 역사적인 부분을 담고 있어서 한정현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져갔던 것 같다.


 제목이 가져다 주는 느낌은 여타의 통속소설과 같지만, 그 안에는 주류 사회에서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당해야만 하고, 주목 받지도 못했던 非주류들이 이야기이자, 소위 주류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집단 안에서 행해지고 강요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학생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횡행했던 행위들, 정당화되고 감추어 지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했던 과거의 상황들이 겹쳐지며 우리가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고 만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폭력이고, 씻을 수 없는 상처이고 또한 삶의 근간을 흔들어 버리는 크나 큰 사건일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작품 속에서는 과거 빨치산 활동 당시 인물을 찾아가며 (연구하며) 지금 현재 잊어버리고 싶은 만큼 처절했던 가까운 과거의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1950년대 초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결코 우리의 인식과 사고방식과 관대함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나 또한 무심코 지나쳐버린 모든 상황과 환경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결코 떳떳하지 않음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그리고 손을 떼지 못했던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 역사적 상황을 따라가는 역사소설이면서, 또한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이면서,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린 퀴어 소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요즘 문학의 흐름에서 퀴어 소설은 많이 노출된 만큼 큰 거부감은 없고, ‘그래 이 정도는 뭐’라고 넘겼던 부분들이 이번에는 좀더 현실감이 있게 상상해보게 됐다.

 실제 그분들의 사고방식과 인식체계를 다시 한번 이해해 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부터 이제까지 내가 동성애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이성애에 바탕을 둔 관점과 사고방식으로 이해보다는 ‘수용해 줄게’라는 방식이 아니었나 자문해 본다.


 아울러, 작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겪는 일들은 지금도 너무나 비슷해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라며,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그곳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 이곳, 이 사회에서 반복되는 문제라는 것. 많은 피해자가 피해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숨을 죽이고 사회의 바깥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과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나 그 후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라든가 빨치산으로 표현되고 있는 과거 국가에 의해 낙인 찍힌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배제와 따돌림이라든지, 우리와 같은 방식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폭력(학교 폭력, 가정 폭력, 직장 내 폭력, 군대 내 집단 폭력 등 모든 형태의 사회적 주류가 非주류에게 가하는 폭력적 행위)이 정당화되고 피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고 숨게 만들어 버리는 현실은 계속 되고 있으면서 더 공고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순간도 인식하지 않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결국 이러한 폭력들은 다시 얼굴만 바꿔 재생산되면서 행해지고, 그리고 때로는 정당화되면서 ‘괴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한 때 사회 변혁을 고민하고 진정으로 민주화되고, 주체적인 사회를 바랬던 사람으로서 작은 것부터 인식하고 나부터 성찰하고 고쳐 나가고, 다른 주위의 행위를 지적할 수 있는 냉철한 인식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묵직해오고 때론 아프고 유쾌하게만 읽히지 않았지만, 책을 읽었다라기 보다는 소설의 형식을 띈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듯 강렬한 잔상이 남게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식하고, 비판적 시각을 놓치지 않고, 생활에서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해보고, 또한 누군가의 하루가 나의 하루에도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좀더 의식있는 입만 번지르한 상태가 아닌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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