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작년 이맘때, 이곳에 와서 30년 동안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원장님. 반삭 해주세요.” “네? 안 돼요. 그건 젊은 멋쟁이들이나 하는 거예요. 보는 거랑 달라요.” 서운할 것도 없는 사실에 나는 한발 물러섰다. “그럼 투블록 컷 해주세요.” 그러면서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틸다 스윈튼」
※ 여기서의 모든 대사는 전적으로 내가 이해한 내용을 내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니, 실제 영화 속 대사가 아님을 인지하길 ~.
마사(틸다 스윈튼)는 잉그리드(줄리언 무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내가 그 희망이란 걸 붙들었다는 거야. 난 다 준비가 되었었는데. 그 빌어먹을 희망을 다시 가졌다는 게 너무 치욕스러워. 암이 전이되었다는 것을 친구에게 전하며, 암에게 승전보를 주는 줄도 모르고 잠시 희망에 한 눈을 판 자신을 역겨워한다.
왜 암과 싸워야 한다고 하지? 그래서 겨우 한고비 넘기면, 정신이 승리했다느니 야단을 떨다가, 다시 암과 싸우기 위해 침대로 가야 하는 거지. 나는 싸우지 않을 거야. 난 늘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어. 난 암과 전쟁을 하지 않을 거야. 암이 나를 쓰러트리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쓸 거야. 그러면 더 이상 암은 나를 어찌할 수 없지.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어. 물론 구하기 어려운 약도 구했어. 이거 구하느라 애먹었지. 그런데 나는 마지막을 외롭게 가고 싶지 않아. 그러니 부탁이야 옆방에 있어줘, Room Next Door.
책을 읽을 수가 없어. 그럼 음악은? 음악도 들을 수 없어. 아마 약 때문일 거야. 하지만 새소리는 들려. 새소리를 들으며 죽고 싶어. 난 방문을 열고 있을 거야. 만약 내 방문이 닫혀있다면, 내가 결정을 한 거야.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해. 절대, 모른다고. 우리는 휴가를 온 거야.
찬란한 날이야. 너는 외출을 했고, 나는 준비가 되었어. 새소리가 들리네. 외롭지 않게 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친구. 영정 사진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마사의 마지막 모습. 샛 노란 재킷, 빨간 립스틱 그리고 금발의 투블록 컷. 나는 마사의 마지막 사진을 찾아 앨범에 저장한다. 다음엔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할 것이다.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의 잔잔히 빛나는 연기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주제에 집중하는 감독의 연출은 그리 무겁지 않은 죽음이 관객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한다. 내가 뭘 어쨌게요? 누구나 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죠. 당신은 저와 어떻게 만나고 싶으신가요?
My Body, My Choice.
어느 진영의 구호가 아닌 인류의 당연한 권리가 되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