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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희 Dec 25. 2023

결국, 구조조정

내 발로 나가려 했는데 회사가 먼저 선수 쳤다

퇴사를 결심한 게 무색하게,

회사가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회사가 어렵다고 말한 게 고작 1-2주 전이다.

물론 마케팅 부서 사람으로서, 회사가 어려운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회사의 실적 압박이 들어왔기 때문에.

하지만, 이렇게나 당장 자금이 부족할 정도로 어려운 줄은 누구도 몰랐을 거다. 아마 파이낸스 팀장 정도는 알지 않았을까.


우리 회사는 CEO와 직접 마주하며 전사 미팅을 갖는 경우가 잦았다.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의례적인 일정이긴 했지만, CEO의 생각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대표는 몇 달 전 전사미팅에서, 모 스타트업 CEO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공유한 적이 있다.

해당 기업은 거의 10명 남짓만 남길 정도로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고 한다.

본인에게도, 기업에게도 뼈아프게 힘든 시기였지만 그 아픔을 딛고 잘 일어나서 지금은 다시 성장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영상을 직원들에게 함께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발판인가?

너희들도 곧 구조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해 주는 걸까?


그 영상 속 CEO는 오랜 기간 동안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을 해고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당연히 없다.

기업이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생 한 명을 자른다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 CEO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직원 구조조정을 마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듯이 소모하는 걸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동료 직원들에게 공유하며, 영감을 받았다는 듯이 얘기하는 우리 대표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동일하다.

정말로 회사가 당장 다음 달 월급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회사가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정말로 직원 개개인이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직원들의 잘못이 아니라면, 왜 페널티는 가장 힘없는 우리 직원들이 받아야 하는 것일까?

결국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나간다.

그 나갈 사람을 결정하는 건 윗사람들인데, 그렇다면 나갈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는 것일까.

팀에서 몇몇 구성원만 나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 당사자가 나라고 하였을 때, 그 직원의 비참함은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없어서’라고 스스로 자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구조조정이 정말 싫다.


* * *


우리는 작은 스타트업이었기에 이미 모든 팀이 최소 인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거의 절반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팀장에게 퇴직의사를 미리 밝혔기 때문에 우리 팀 다른 동료들은 남을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은 함께 퇴사당하지(?) 못해서 뭇매 아쉬워했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조건 승리자가 아닌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타 팀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방문했을 때, ‘제가 대신 나가드릴 수 있는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분의 말이 마냥 농담처럼만 들리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업무가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했고, 거기에는 보상 또한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구조조정을 한 기업에서, 두 번, 세 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자진 퇴사를 하기에는 오히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니까 더 억울하기만 할 것이다.


동료들은 나의 구조조정(을 빙자한 희망퇴직)을 위로해 주었고, 나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어떻게 보면 퇴사를 결심하고도 계속 망설이던 내 마음에, 회사가 제대로 폭탄을 던져준 셈이다.

처음 퇴사를 결심하고, 다짜고짜 브런치에 글을 써 내려간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 자신이 없어.’


정말 그 생각이 맞다고, 온 세상이 나에게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퇴사를 결심했다고 했지만, 구조조정 관련해서 인사팀장과 면담을 할 때에는 나도 감정이 참 북받쳤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운 좋게도,

일반 퇴사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해 퇴사를 했기 때문에 실업급여까지 챙길 수 있다.

이 상황을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며, 당분간은 재충전에 집중할 계획이다.


나의 네 번째 회사도 정말 끝났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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