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4. 05. 01. – 06. 22.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한국의 1세대 조각가 문신(1922-1995)과 ‘사진조각’으로 잘 알려진 동시대 조각가 권오상(b. 1974)의 2인전이 개최되었다. 각 섹션은 작가별 혹은 시대별이 아닌 주제별 구분을 택해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아우를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작고한 선배 작가와 활발히 활동 중인 후배 작가의 조합을 볼 수 있었다.
나아가 권오상이 문신의 작품을 재해석, 오마주한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기에, 이 전시를 통해 두 조각가 간의 교류를 도모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전시는 1970년에서 90년대까지 이어진 문신의 다양한 시도와 1990년대 후반 새로운 매체 사용으로 주목 받아온 후배 조각가 권오상의 조각적 실험을 연결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문신의 조각은 시메트리(symmetry: 대칭, 균형) 구조에 기반한 독특한 추상 형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완벽한 대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 비대칭적인 요소까지 통섭하며 자연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상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녔다. 이처럼 그의 조각에서 시메트리는 하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1943)가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의 조각을 분석하며 제시한 ‘생명주의(Vitalism)’와 연결되며, 생명의 감흥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이러한 특징은 자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조각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 그의 예술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오상은 조각과 사진을 결합한 ‘사진조각’을 전개하며, 형식 실험을 통해 조각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가다. 그는 주로 잡지에 실린 사진 등 소비문화 시대를 투영하는 소재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그의 작품은 단열재인 아이소핑크(isopink)로 내부 지지물을 만든 뒤 그 위에 사진을 붙이고, 에폭시(epoxy)나 무광 코팅을 추가하는 방식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들며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사진조각은 실재하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평면적 이미지이자 이미지 자체의 물질화다. 지면 혹은 디지털 데이터로 존재하던 이미지는 실재하는 공간으로 해방되는 동시에 부피감을 지닌 입체물로 변신했으며, 이를 통해 이미지의 물질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선 내용들로 짐작할 수 있듯이 전시의 제목인 “깎아 들어가고, 붙여나가는”은 두 작가의 작품 제작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문신이 자주 사용했던 흑단(Ebony)은 나무이지만 쇠처럼 단단해서 다루기 어려운 재료이다. 그러나 표면을 연마하여 윤을 낼수록 재료의 본질이 살아난다. 한편 권오상은 사진을 이어 붙여 입체물을 만들기 때문에 전통적인 조각 재료와 달리 매우 가벼운 특성을 지닌다. 이 ‘가벼움’은 무게와 위트라는 중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듯 향유한 세대도 작품 형식도 다른 두 작가를 연결한 것은 권오상의 신작 <권오상 조각 스튜디오를 비추는 문신>(2024)이다. 이는 매끄러운 표면의 빛의 반사로 주변을 비추는 문신의 스테인리스 조각의 미학을 사진조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선배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된 특징을 탐구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후배 작가의 노력으로 인해, 닿을 수 없는 두 작가의 거리는 한껏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