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주의의 경제를 말하다
씽큐베이션 11기 활동을 진행하면서 만난 독서임계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완독했다. 경제관련도서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이 벽돌책 격파를 위해 읽어나가는 것은 고뇌의 시간이었다. 정말 꾸역꾸역 읽어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래서 나는 완독한 것에 의의를 두며 서평을 작성해보려한다. 케인스를 읽으면서 정말 많이 느낀 것은 이 책 저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찰력이었다. 이렇게 두꺼운 책에 빈틈없이 1차세계대전부터 시작하여 대공황을 거쳐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까지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오늘날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경제와 역사를 통합하고 그 속에서 케인스의 삶을 서술해나간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까지 대영제국은 금본위제 시대의 그야말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대영제국이 세계적 신뢰를 잃을 위기에서 케인스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해결책을 제시하여 그 당시 경제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후에 미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밀려나게 되지만 말이다. 사실 경제학을 처음 접하다보니 케인스 그 자체의 삶에 집중하여 읽어나갔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정치와 경제는 함께 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1차세계대전이 미국이 뒤늦게 참전하여 승전국으로 떠오르고 독일이 패하며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세계가 경기불황을 겪는다. 독일이 부담해야하는 전쟁부채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진행된 파리평화회의 결과에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으로 베르사유조약에 관한 혹평을 마구마구 쏟아내었다. 파리평화회의에서 케인스의 생각과 행동은 정말로 대단했다. 나는 이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가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계경제와 사람들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와는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케인스가 살았던 시기에는 경제적 불안정이 계속 이어져 디플레이션을 겪게 되는데 읽어나가면서 사실은 1차 세계대전, 전쟁을 시작으로 베르사유조약, 그 다음으로 이어진 이 경제불황이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은 혁명을 일으키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에 반해 들고 일어서서 고통 속에서의 사람들은 기댈 누군가를 찾게 되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 나치정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케인스는 통화가치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정부나 중앙은행이 통화가치를 규제하고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통화가치의 공급을 관리하는 것이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케인스는 금본위제나 자유방임주의를 반대했는데, 시장은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개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자, 공산주의냐 아니냐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금리'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쳐보았다. 한국은행(우리가 알고있는 한국은행이라는 기관도 케인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시장 자본주의에 필요한 기관이라고 볼 수 있겠다)의 기준금리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며 알게 되었고,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사람들은 불안함에 은행에 있는 모든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 내가 알고 있는 예금자보호법, 오천만원 이하의 예금보호법도 케인스경제학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케인스경제학이 탄생하면서 루스벨트,린든존슨, 리차드 닉슨, 빌 클린턴 등 심지어 오바마까지 케인스 경제학의 서사를 지나 지금 현 세대에 안착하게 된 것은 케인스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단,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으려면 대중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수요가 늘도록 장려해야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받은 재난지원금도 이에 속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경제불황을 겪지 않기 위해 수요를 늘리기 위한 정책 중 하나이지 않을까.
뉴턴 이후로 세계 정치와 지적발달에 케인스만큼 심오한 영향을 미친 유럽인은 없었다.
12장까지는 이 악물고 읽으라는 조언에 계속 고뇌의 시간을 거치며 읽어나가다보니, 케인스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케인스가 젊은 시절부터 세계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열정적인 모습부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실행해내는 천재성과 리더쉽. 자신의 삶이 다할때까지도 세계경제를 위해 끈임없이 끈기있게 연구했던 케인스의 삶이 마무리되니, 마음이 찡하면서 눈물이 났다. 케인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12장까지 100% 이해하면서 읽은 것도 아닌데, 너무 케인스의 삶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던 탓인가 하면서 13장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튼 케인스 사후에는 케인스의 제자들이 케인스 경제학을 이끌어나가며 세계경제시스템에 기여를 한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을 공산주의자라고 타도하며 마녀사냥 비슷한 것(매카시즘)을 겪기도 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져왔다는 것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케인스를 다시 찾게 된다. 이는 단지 적자재정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거나 금리가 유동성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갈 곳이 미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종국에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협력하여 행동을 취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케인스의 삶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경제호황, 불황을 오가며 뿌리내려져 온 관리와 관습들, 지금의 경제시대를 단 시간에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케인스를 계승하여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비전을 추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그런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새로운 브레튼우즈 회의) 케인스를 시작으로 경제학을 배우고 케인스의 삶에서 귀감이 될만한 요소들도 보고 배우며 이 책을 읽어내는 내 고뇌의 시간에 박수를 보내면서 조금 더 나는 교양지식인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공부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