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행복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의 나의 깨달음, 무릎을 탁 치며 느낀 그것은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말 뇌리를 스쳐지나가며 깨닫는 것과 그냥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나는 항상 뭔가를 성취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내가 좋은 직업을 가지면, 알고 있는 게 많으면! 과 같은 뭔가를 잘하게 된 후에야 행복이 찾아올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끈임없이 하루하루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경험하고 느끼는 삶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조건이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삶 같은 것은 없다. 미래에 어떤 행복을 유보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현재 이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퓨처리스트의 저자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에 따르면, 미래는 유동적이고, 그 유동성은 현재와 가장 밀접하다.
이 책은 이런 나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더욱 더 확장시켜주었다. 사람이 행복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느끼면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뇌는 쾌(긍정적 정서),불쾌(부정적 정서)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 굉장히 불분명하다. 그 이유는 우리 뇌가 진화론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되어 있어 실제로 우리 뇌는 우리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수렵채집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인류가 발전되는 속도에 발맞춰 따라오지 못하고 그래서 지금이나 예전이나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자원과 환경에 끌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그 행위들 속에 행복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정신적인 도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긍정적 정서를 더 많이 느끼기 위한 행동, 그 중에서 예를들면, 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서은국 교수의 행복론에 따르면, 기분좋은 그 성행위를 하기 위해 더 좋은 사냥감을 가져온다거나, 구애하기 위해 더 좋고 멋진 몸을 만드는 것과 같은, 그저 쾌에 대한 욕구로 그러한 성취를 이루고, 생존과 번식에 더 최적화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되어있는 뇌 속의 그러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왔으니 오늘날에도 똑같이, 쾌에 대한 느낌을 더 많이, 될 수 있으면 자주,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를 더 이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자원에 끌리도록 만들고, 생존과 적응,번식에 유리한 쪽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표면적으로는 기술과학의 발달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면서 원초적인 것들이 적나라하게 들어나지 않는 오늘날 사회에서도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뇌를 달고 있는 이상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기가 많은 사람, 재력을 갖춘 사람 등은 곧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이다. 결국에 행복하기 위해 하는 우리의 노력들은 곧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생존에 유리한 자원과 환경 속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우리 뇌가 그것에 더 끌리도록 설계되어있다. 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행복론이 시사하는 바는,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어떤 것, 좋은 학교, 좋은 직업, 좋은 배우자 같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각자가 원하는 삶을 향한 과도한 열기 속에서 관점을 달리하고 행복은 원래 우리가 진화하면서 생겨난 정신적 도구에 불과하니, 그 도구를 잘 이용해서 긍정적 정서를 더 많이 이끌 수 있는,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부분적 요소들을 찾게하고 우리네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행복론은 행복이 인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이며, 목적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는 그저 거대한 자연 속에 일부분일 뿐임을 이해하면서 쾌를 얼마나 자주 느끼냐에 따라 행복감이 정해지기에 내 삶에서 쾌를 느끼는 요소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중요하겠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결국에 우리가 생존에 유리한 자원 중 최고의 가치는 사람인 듯 하다. 책에 나온 행복연구에 따르면,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더 높다.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서로의 관심을 주고받을 때 긍정적 정서가 발동한다. 이것도 뇌의 활동이다. 왜냐하면 집단생활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진화에서 도태되었듯,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면 생존에 유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과 함께 해야지만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마이클 하얏트의 초생산성에 따르면 우리는 연결될수록 똑똑해진다. 앵거스 플레쳐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에 따르면,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내면적 규범의 범위를 넓혀나간다. 혼자 뭔가를 생각할 때보다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 백배 천배 더 낫다. 결국에 내가 생각했을 때 도태된 인생이라 한다면, 사람이 없는 인생이 아닐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빈곤한 인생이 사람이 없는 인생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관심이 절실해질 때 어떻게 되는가를 가끔씩 보게 된다. 심지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2살배기 아기조차도 관심받기 위해 무언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하물며 우리는 우리 내면 속에 감춰진 외로운 아이를 뒤로하고 페르소나를 통해 어른인 척, 외롭지 않은 척, 행복한 척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 외롭다. 내 주변의 사람들 중 한 명은 내향인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함께 안아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뭔가를 함께 해보자는 아주 좋은 취지로서 함께 연결되기 위해 노력한다. 쾌를 위한 단계 첫번째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결국 싫든 좋든 다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