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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Feb 28. 2023

학폭

-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 아들의 학폭 논란을 보면서


어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이하 '정 씨'라고 함)가 아들의 학폭논란으로 인해 사퇴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들었던 복잡한 생각들을 차근차근 적어보려 한다.          




처음 정 씨 논란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최근 며칠간 논란이 한창이었는데, 사실 정 씨의 아들이 피해자에게 어떠한 폭력을 가했는지는 미처 알지 못하여, 그저 막연히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벌어진 정도의 끔찍한 폭력이 있었겠거니 짐작하고 있었다.   

   

글을 읽어보니, 정 씨 아들이 피해자에게 한 행동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① ‘돼지’라고 놀렸고, ② 다른 친구들이 제지하였음에도 계속 놀렸으며, ③ 교실에서 뿐 아니라 방과 후 기숙사에 와서도 놀렸고, ④ 후배들 앞에서도 놀렸다는 것이었다.      


사실관계가 담긴 기사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수위가 약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듯 보기에 이 사건에서 ‘극악무도한’ 폭력이 가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욕설을 한 것도 아니었고, 때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성장기에 겪고 보았던 학교폭력의 수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에서 행해진 폭력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무엇이 폭력일까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행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궁극적으로 '지배와 복종'으로 귀결된다. 타인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이를 지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복종이다. 타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을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습된 무기력 속에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질서에 순응하고 내재화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질서로 받아들이면 차라리 다행일지 모른다. 지배 질서에 도저히 동화되지 못하고 깊은 상처만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피해자는 단순히 무기력에 그치지 않고 패배의식에 빠지며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말로 갈구는 게 때리는 것보다 더 아픈 경우가 있다. 난 군대에서 단 한 대도 맞지 않았지만, 언어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깨달았다. 말로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에 능한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말하면 사람을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코너에 몰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폭력을 동원하여 사람을 지배하고 복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 폭력은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그 형태를 떠나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고, 전근대적인 봉건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씨 부부는 이러한 인식이 없었거나 인식이 있었더라도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하건대, 정 씨 부부는 이 사건에서 ‘돼지’라는 표현이 과연 언어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욕설만이 언어폭력에 해당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욕설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따지면서, 자신의 아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비단 정 씨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이런 분들은 도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정 씨 아들이 피해자에게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한 게 아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어폭력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모멸감을 안겨주는지 무지하고 무감각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심지어 정 씨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인사들 중 어떤 이는 내 지인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하여 문제가 된 바 있다. 스스로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모습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셈이다.)

 

흔히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수위가 낮고, 심지어 언어폭력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욕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면, 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나는 평소 당연히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건을 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성장기에 폭력을 겪었으면서도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구시대에 갇혀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겪은 학폭


나는 내 또래의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소위 '인싸'로 지내면서 아무런 폭력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로 진학할 무렵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면서, 힘든 시간은 시작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배정받은 중학교는 '깡패학교'로 유명한 곳이었다.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이 재단을 인수하여 한참 설비확충에 열심이었다고 하지만, 학풍까지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남자중학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이들은 유난히 거칠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수업시간에 재미있던 수업내용을 떠들며 이야기하다가 어떤 아이로부터 '지랄하지 말고 닥쳐'라는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아이는 어느 날 체육시간에 내 바지에 가래침을 뱉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아이의 이름뿐 아니라 그때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으로 보면 일진이라고 불릴만한) 어떤 아이들은 패거리를 이루어 교실을 돌아다니며 빈자리에 있는 필통 속 고급 일본 문구류를 훔쳤고,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당시 유행했던 이스트팩, 잔스포츠 같은 가방을 훔치기도 했다. 흡사 도적 떼와도 같았다. 이들은 교문 밖으로도 진출하여 동네 근방 학교에 패싸움을 하러 다녔으며, 학교 내에는 그들의 싸움이 무용담처럼 전해졌다. 한 번은 현충원에 사생대회를 갔는데, 마침 휴점 상태에 있는 매점의 셔터를 뜯고 매점 내 물품을 모두 털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그날은 유독 교실에 빈자리가 많았다. 중3 때 빈자레가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진 어떤 친구는 조직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들 했다. 어떤 날엔 쉬는 시간에 비비탄을 쏘기도 했다. 비비탄을 목에 맞은 친구들은 뒤를 돌아보기만 할 뿐,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다.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급속도로 어두워졌던 것 같다. 책과 글이 내 도피처였다. 쉬는 시간에는 그저 책을 열심히 읽었고, 공부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힘든 마음을 일기장에 녹여냈다. 굳이 일기장이 아니더라도 아무 노트에나 끄적였다. 그렇게 한참을 끄적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졌다. 중학교 1학년 때 기억에 남는 친구가 거의 없다. 오로지 내게 잘해주셨던 담임선생님만이 남아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 나는 선생님 앞에서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런 폭력을 겪고 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특히 물리적으로 나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다. 그 사람이 내게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계를 하게 되고, 그 사람이 내게 잘해주면 '어? 이 사람이 왜 나를 때리지 않고 잘해주지?'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물리적으로 덩치가 큰 친구가 내게 무관심하거나 냉랭하게 대하면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약해서 그렇구나'하고 서글퍼진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은 참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내 편이 단 한 명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폭력을 당했을지언정 내가 왕따를 당하거나 집단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랄까. 특히 나를 좋아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나를 예뻐해 주고 챙겨주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어떻게 보면 암흑과도 같던 시간들은 그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반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너무나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가 겪었던 끔찍한 상황을 당시 그의 진술 내용으로 짚어볼 수 있다.      


피해학생은 C학생이 교육청 재심에서 '전학' 취소가 결정된 뒤 열린 2018년 5월 28일 A고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에 출석해 다음처럼 진술했다.


"4개월을 학교에 못 나왔다. (학교에) 와보니까 걔(C학생)랑 (제가) 같이 수업을 듣더라고요. …자기(C학생)가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판결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고, 애들은 그걸 듣고 떠들고 웃고. 정말 악마인 것 같아요. “     


‘가해자의 말을 듣고 떠들고 웃는 애들’을 보면서, 피해자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심지어 피해자는 기숙사에 살았다고 하니, 교실을 벗어나서도 여전히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 대해 온라인에서 온갖 말들이 오갔다. 심지어 그중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남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물리력을 발산하고, 그 과정에서 성숙해진다 ‘고 말하면서, 학교 내에서의 폭력이 자연스럽게 용인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끔찍한 이야기이다. 물론 당연히 가해자들은 대개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어떨까.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한다면 쉽게 잊을 수 없다. 특히 폭력을 가한 사람과 한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폭력을 당해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주먹이 되었든 말이 되었든, 그로 인해 모멸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상실한다면 이는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심각한 폭력으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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