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느 전세사기 기사를 읽었다. 신탁부동산을 임차한 사람의 사연이다. 신탁사에 부동산을 신탁한 사람이 신탁사 동의도 받지 않고 부동산을 임대했다. 임차인은 보증금을 지급했다. '4개월 이내에 신탁을 해지한다'는 임대인의 말을 믿은 것이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차인은 신탁사에게 임대차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부동산은 엄연히 신탁사 소유이기 때문이다.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셈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2324#home
이런 유형의 사기는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했다. 오히려 너무 해묵은 주제로 보일 정도다. 정부지원자금을 노린 '빌라왕' 사기는 새로운 유형이라 차라리 신선하기라도 하다. 대체 왜 신탁부동산을 이용한 사기는 계속 반복되는가
이 사건의 본질은 신탁사기가 아니다. 공인중개사의 역량부족이다. 공인중개사는 국가가 공인한 부동산 중개 전문가이다. 임차인의 의뢰를 받아 부동산의 사실적 법률적 사항을 확인하고 설명하며 그 대가로 중개보수를 받는다. 공인중개사는 부동산이 누구 소유인지, 임차한 뒤 발생하는 문제는 없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로부터 그 능력을 공인받은 사람이다.
중개역량을 갖추지 못한 일부 공인중개사들
문제는 공인중개사가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용된 기사를 다시 살펴보자. 기사에 따르면, "소유권 이외 권리 사항을 담은 '을구’에 ‘기록사항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등기부 등본은 깨끗했"고, "선순위 대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을구가 깨끗하면 선순위 대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가. 갑구를 보면 임대인이 아니라 신탁사가 소유자다. 신탁사 소유 부동산을 임대하는 건 아무 문제없을까.
기사로 다시 돌아가자. 임차인은 "소유권을 다룬 '갑구'에 건물주가 집을 지은 직후 부동산신탁회사에 신탁하며 소유권을 넘긴 것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4개월 이내에 신탁을 해지한다는 특약을 넣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신탁사에게 부동산 소유권이 넘어간 것은 인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4개월 내 신탁해지 특약을 두었다고 한다. 공인중개사는 과연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았나.
이 사건에서 신탁의 본질은 근저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사에도 나오듯이 위탁자(임대인)가 돈을 갚지 못하면, 부동산이 공매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차인은 보호받을 수 없다. "4개월 이내에 신탁을 해지한다는 특약을 넣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는 말은, "4개월 이내에 근저당을 해지한다는 특약을 넣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 신탁은 몰라도 근저당은 안다. "4개월 내에 근저당 해지해줄게요. 믿고 보증금 내시죠"라는 말을 믿고 수백, 수천만 원씩 돈을 입금할 임차인이 얼마나 될까.
이 사건을 신탁 사기라고 명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공인중개사의 무능력도 함께 다뤄졌어야 했다. 임대인 탓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신탁사 동의없이 부동산을 임대하고 자신의 계좌로 보증금을 받아 챙긴 임대인은 당연히 사기꾼이 맞다. 공인중개사는 아무 잘못이 없나. 이 사건에서 임차인은 신탁 해지 약속을 믿고 보증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임차인의 독자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연히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듣고 결정했을 것이다. 이 공인중개사는 과연 신탁원부를 확인했을까.
중개사고로 밝혀져도 중개의뢰인은 온전히 구제받기 어렵다
나아가 해당 공인중개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해도, 책임을 온전히 묻기 어렵다. 관련하여 2가지 쟁점을 더 살펴봐야 한다. 공제금 한도와 법원의 판결 경향이다.
공제금 한도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중개보수도 계속 올랐다. 하지만 중개사고시 중개의뢰인이 공인중개사협회 또는 보증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는 금액 한도는 2억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1건에 2억 원이 아니라, 총 사고금액 기준이다. 해당 공인중개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고를 쳤다면, 한 의뢰인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더불어 법원의 판결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개사고로 인해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을 물을 경우, 대다수 판결이 중개의뢰인의 과실을 상계한다. 중개의뢰인은 왜 수백만 원의 보수를 내면서까지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하는가. 공인중개사의 역량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공인중개사는 신탁원부조차 보지 못한다. 중개의뢰인은 공인중개사를 믿고 의뢰한 잘못밖에 없다. 중개의뢰인에게 과연 잘못을 따질 수 있는가. 의뢰인이 신탁원부까지 직접 확인해야 하나.
추후 시간이 되면 대책을 써보고자 한다. 이제 신탁부동산 세입자들의 피해사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