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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Jul 09. 2023

누가 '대치동'에 집착하게 만들었나

이 글의 몇 가지 전제


제목을 '대치동'이라고 붙였으나 이를 '사교육'으로 혹은 '스타강사'로 바꿔도 될 것 같다. 한국사회의 교육 현실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끄적여보고자 한다. 너무 민감한 주제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개 각자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두에 몇 가지 전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 '대치동에서 애들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꼭 애들이 성공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의미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2. 나는 강남 8학군에 소재한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곳에 있는 학원들을 다녔다.

3. 어릴 때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시기이다.

현재 교과과정을 보면 학습량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4. 건전한 경쟁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5. 공부를 잘해야만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점들


이제 학부모가 되는 주변 선배,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남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강남이란 소위 학군이 좋은 서초, 강남, 송파 일대 지역을 의미한다. 일부는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전세를 얻기도 하는 것 같다. 강남을 노리지 못하는 이들은 목동이나 노원 쪽을 대체지로 고르기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꼭 강남에서 애들을 키워야만 할까. 강남에서 키워야만 성공할 수 있을까. 강남에서 유명한 축에 속하는 모 고등학교를 나온 입장에서 몇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1. 공교육의 질은 여느 다른 학교와 다르지 않다.

학교 선생님들의 강의 수준은 보통 수준 혹은 그에 미달했다. 교과서를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학생들에게 읽게 시키는 분이 있었고, 준비해 온 내용을 칠판에 써놓고 공책에 옮겨적도록 하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어차피 너네 학원에서 배우잖아?'라며 자습을 시키는 분도 있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EBS 교재나 다른 출판사 수능 교재를 집필한 실력 있는 선생님들도 계셨고 그런 분들의 수업은 매우 유익했다.


2. 학생들의 수준

물론 다른 학교에 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기는 했지만, 모든 학생들이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고교 평준화에 따라 뺑뺑이로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우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았다. 현역과 재수생을 합쳐 매년 30명 이상 서울대에 진학했다. 반에서 10등 정도까지 소위 인서울 대학에 갔던 것 같다. 소위 '날라리'인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상위권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전교 상위권 학생들은 그들끼리 자체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보습학원에 강사를 초빙하여 수업을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학벌이 매우 중요했다.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하면 불행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당시 좋은 대학교에 갔던 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힘들게 사는 친구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문직 친구들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고, 회사원 친구들도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고, 있는 집 자식들은 좀 더 여유 있게 산다. 그렇다면 당시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했던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있는 집 자식들은 좀 더 여유 있게 살고, 전문직 친구들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고, 힘들게 사는 친구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학벌은 더 이상 보증수표가 아니었다. 학벌과 무관하게 사회에 나와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3. 사교육은 그 당시에도 절대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손주은, 김기현, 이범 등과 같은 스타강사들이 있었다. 다만 이들이 시장을 독점한 것은 아니었고, 그 외 각 과목별로 잘 나가는 강사들이 있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은 보다 더 고급 수준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강사를 별도로 초빙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4. 대치동에 대한 환상

그 당시에도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녀본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이 더 컸던 것 같다. 언론에서 대치동 학원가, 사교육에 대해 보도하는 걸 보면서, 과장된 내용도 많다고 생각했다. 대치동에 가면 탁월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니지 못하면 낙오될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부분적으로 그럴 가능성도 있겠으나, 사실 대부분은 과장된 것이고 사교육계에서 의도적으로 현실을 부풀린, 일종의 공포마케팅이었다.


5. 중요한 것은 면학 분위기

중요한 것은 주변에 어떤 친구들이 있느냐였다. 수능 수준이 반드시 사교육을 들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혼자서도 극복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그걸 '혼자서'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학생들의 학습의지는 대체로 고만고만 하고, 결국 주변 분위기에 좌우된다. 강남 8학군 뿐 아니라, 각 지역 명문고에서 꾸준히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대치동에서 자란다는 것의 이점은 바로 이 점에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웬만큼만 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덕분에 느끼는 안정감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비단 대치동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대치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정책에 대한 의문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보면서 드문드문 의문을 가지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한 마당에 굳이 대학입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사교육계에서 밥벌이를 한다면 모를까. 2세를 낳고 기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금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지난 대학생활, 졸업 이후의 사회생활을 통해 생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교육정책을 바라보면 몇 가지 의문이 다. 참고로 아래에 적는 의문과 비판은 비단 지금 윤석열 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1. 문제는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 아닌가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이유는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 아닌가. 학생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면 굳이 학원에 갈 이유가 없다.


구조적으로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경쟁을 독려하지 않고, 부실한 수업을 견제할 장치도 없다. 한편으로는 교육 인프라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 교사들의 행정업무가 많다는 점은 공교육 부실의 고질적인 핑곗거리이지만, 사실 맞는 얘기다.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줄여주고 교수법 연구에 매진하게 하면서, 불성실한 교사는 견제해야 한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을 통제할 권한이 미약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는 별도로 논하기로 한다.


물론 공교육의 질이 높다고 사교육이 소멸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공교육의 질이 어느 정도 담보된다면 사교육 의존도는 확실히 떨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있다.


한편 우리 교육 당국은 공교육 부실로 인한 공백을 EBS로 보완하려는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수능 출제 문제를 EBS 교재와 연계하려고 시도하나 이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2. 교육과정의 범위를 확장해야 하지 않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과정의 범위가 점점 축소되었다. 과연 합당한가. 우선 이 점을 논하려면 우리 공교육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공교육은 총 12년의 의무교육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취학연령에 달한 모든 아이들을 학교로 소집하여 12년간 동일한 내용을 교육하는 것이다. 국가는 이를 통해 문맹률을 최소화하고 공통된 상식을 갖춘 시민을 양성한다. 학교는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통제가능한 시민을 배출해 낸다. 이러한 목적 달성에 있어 주입식 교육은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일부 집단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의문이 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굳이 미적분, 통계를 배울 필요가 있느냐. 굳이 어린 나이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겪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미적분 몰라도 충분히 밥벌이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우리 공교육이 대학에서 수학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면, 교육과정을 보다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에서 오로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다. 청소년기는 가장 학습능력이 좋은 시기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회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보다 많은 것, 보다 어려운 것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의 교육과정 하에서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우지도 못하면서도, 고득점을 위해 문제풀이 스킬에만 열중할 뿐이다. 이는 인재양성과도, 창의력과도 무관하다.



3. 교육을 개별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만 모두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굳이 대학수학능력을 기를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대학수학에 필요한 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사회로 나와 사회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교양법학, 경제상식과 같은 교육을 받으면 된다. 학교 졸업 후 사기당하지 않고 무난하게 밥벌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 교육과정을 개별화하여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대신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그 목표와 달리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키지도 못했고, 오히려 모든 학생들을 하향평준화했으며, 사교육을 잡지도 못한 듯하다.



4. 사교육을 견제해야 하나

우리 교육정책 수립에 있어 사교육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교육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가. 이는 마치 시장을 없앤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국가가 시장을 없앨 수는 있다. 그 대신 암시장이 형성될 뿐이다. 대놓고 과외를 금지했던 전두환 정권 때에도 사교육은 사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잣집의 전유물이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부잣집에 살면서 입주교사로 생활비를 벌었다.


지금의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사교육은 건재하다. 사교육 견제를 목표로 축소되었으나, 변별력 확보를 위해 소위 '킬러문항'을 만들어내 결국 사교육을 활성화시키고 말았다. 사교육을 무리하게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공교육을 개별화하여, 교육과정을 보다 확장하고 난이도를 높인다면 사교육업계 또한 보다 고급 교육을 제공할 것이다. 자연스레 국가 인재 양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고급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학원강사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레 사교육 업계도 현재보다 축소될 수 있다. 최소한 자잘한 문제풀이 스킬로 돈 버는 학원은 줄어들 것이다.



5. 지역명문고를 육성해야 하지 않나.

우리 공교육 현실은 결국 '대치동' 집중화로 이어진다. 양질의 사교육 인강을 수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현실이 부실하다 보니 학부모들은 우수한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무리하게 주거지를 이전한다. 소위 '학군지' 일대의 집값이 유독 높은 것은 이를 방증한다. 자녀 교육 문제만 아니라면 굳이 주거지를 무리하게 이전할 이유가 없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주변에 학습의지가 있는 유순한 아이들이 많아 면학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굳이 대치동에 갈 이유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각 지역의 명문고 육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각 지역의 자율형 사립고가 그 역할을 해왔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지역의 인재들이 한데 모아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명문고를 각 지역별로 육성하면 어떨까.



6. 교조적으로 학생인권에 접근하는 것 아닌가

지난 20년간 우리 공교육은 학생인권에 크게 집중해 왔던 것 같다. 이로 인한 장점은 매우 뚜렷하다. 더 이상 교사에게 폭력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교사는 더 이상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학생의 '싸대기를' 때릴 수 없다. 갑자기 불시에 두발을 잘리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다른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따른 체벌지 않아도 된다. 교실에서 학생의 인권은 크게 신장되었다. 더 이상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이었던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상당해 보인다. 학생들은 교사의 통제를 벗어났다. 더 이상 교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심지어 수업 전 핸드폰을 수거해 가는 것도 학생인권 침해라고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이쯤 되면 학생인권에 대한 접근이 교조적이지 않나 싶다. 학생이 집중하여 수업을 듣도록 핸드폰을 수거하는 것이 어떻게 학생인권 침해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학생들을 강제로 학교 교실에 몰아넣고 수업 듣게 하는 것은 인권적인가. 의무교육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의 구체적 현실을 고려하여 학생인권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며

모든 학부모가 자기 아이를 출세시키고자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낙오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도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학부모는 최소한 자기의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출세? 선망받는 직업? 고득점? 우리 사회에서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면, 출세하지 못하면' 불행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할 학부모들은 유의미하게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치동의 사교육은 출세를 위해, 선망받는 직업을 위해, 고득점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주한 학부모들은 대개 '우리 아이가' 용의 몸통이라도 되면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경쟁을 시키면, 어떻게든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어릴 때부터 경쟁적인 환경에서 키워야 하나. 경쟁에 능하고 경쟁을 즐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이의 일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부모의 눈치만 보면서, 부모를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전교 상위권이었지만 대학에 가서,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급격하게 망가진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급격히 사회분위기가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학벌을 선망하지 않는다. 부를 선망할 뿐이다. 학벌을 선망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부를 쌓기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하는 시대가 아닌 듯하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충분히 증명해 내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대학에 가고자 한다면, 보다 확실하게 교육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대치동에 가야 하는가. 강남에 가면 수준 높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가. 눈높이가 높아지는가? 순한 아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가?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은가? 확률이 높아질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 확률을 위해 비용을 투입할 가치가 있을까. 대치동은 대체불가능한 곳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치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품성 좋고 우수한 아이들과 교류하게 만들 수 있다. 여유가 없는데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대치동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아이디어일 뿐이다. 실제 현실은 어떠한가. 대치동에 대한 생각은 이제 의견 수준을 벗어나 우리 사회에서 공통된 정서, 극단적으로는 일종의 신념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소신 있는 학부모라도 그 신념체계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그 신념체계를 악용해 지대를 추구한다. 이미 이는 학부모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국가차원에서 교육정책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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