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변의 잡설 Jul 27. 2023

20년 전 엄마에게 있었던 일


이번 서이초 사건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났다. 지난 2002년 엄마에게 있었던 일이다. 특히 엄마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오늘 아침 엄마와 통화하다가 당시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1. 엄마는 당시 개포동의 모 중학교 3학년 교실의 담임교사였다. 당시 광장동의 모 중학교에서 엄마 반으로 전학 온 학생이 있었는데 전학 후에도 말도 없이 무단 결석을 반복했다. 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손바닥을 때렸는데 그 다음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왔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어머니도 삼촌과 함께 학교에 찾아와서 신고하겠다, 고소하겠다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학교의 교감, 교장은 어머니를 찾아와서 ‘그냥 좋게 합의하라'고 타일렀다. 특히 교장은 퇴직을 1년 남겨둔 상태였는데 불명예퇴직할까 교육청의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교장 교감은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엄마는 40대 중반의 젊은(?) 교사였는데 이 일을 겪으며 학교나 교육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닫고, 직접 증거수집에 나섰다. 


당시 학생에게 진단서를 작성해준 방지거병원의 담당 의사, 학생의 전학 전 학교인 광장동의 모 중학교의 담임 교사, 학생지도 교사, 모 초등학교 교사를 모두 찾아가서 자료를 모았다. 위 담당의와 교사들은 엄마에게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대화내용도 모두 녹음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사정을 들은 같은 반 학생들도 진술을 해주겟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학생이 몇년 전 교사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하여 거액의 합의금을 받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수법이었다. 


며칠 후 학생 어머니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학생 어머니는 두 명의 삼촌과 함께 나왔는데, 엄마에게 협박 조로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교사 그깟 것 그만두면 된다. 나는 준비 다 해놨으니 신고든 고소든 다 해봐라'라고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이 듣던지 말던지 큰 소리로 말했단다. 그러자 상대방은 '이 선생 안되겠네'라며 그냥 좋게 합의나 하자며 합의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엄마는 합의 제안도 거절했다. 합의에 응했다가는 잘못을 자인하는 게 되어 두고두고 발목을 잡힐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후 곧 여름방학이 되었고 방학이 지나도록 상대방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여전히 무단결석을 반복하며 지내다 졸업했다고 한다. 


2.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나도 나름 머리를 굴려 국가기관에 민원을 넣고 영향력 있다고 생각한 '지식인'들께 메일을 보냈다. 그때 내게 장문의 회신을 보내주신 분이 당시 전북대에 계시던 강준만 교수였다.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깊이 공감하면서 힘닿는대로 도울테니 또 연락을 달라고 했다. 


3.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런 얘기를 어디 가서 해봐야 엄마에게 불명예스러울 뿐 하등 이득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교사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개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자의적인 폭력을 당한 기억이 있다. 물론 선생님에게 감사한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주로 목소리를 내는 쪽은 악감정을 가진 이들이다. 교사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 한들 굳이 나서서 교사를 옹호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한다 한들 '그래서 너네 엄마가 손바닥을 때린 건 맞잖아' 라는 말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이초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공분을 사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랍기도 하다. 사실 이게 하루 아침의 일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그만큼 교권 침해에 대한 불만 혹은 위기감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방증인 것 같기도 하다.


4. 엄마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너무나 슬펐다고 했다. 서이초 교사가 왜 본인이 가장 사랑하던 교실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겠느냐. 학교 밖에서 죽었으면 분명 사적인 일로 죽었다고 할테니,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리고 싶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그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 교사의 심정은 물론, 엄마의 마음도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하기 힘든 지점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누가 '대치동'에 집착하게 만들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