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의 하루는 단순합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한 시간을 달려 병원에 옵니다.
입원 환자들이 밤새 안녕했는지 체크하고, 필요한 처방을 넣습니다.
외래 환자를 만나 어떤 검사를 할지 고민하고, 검사 결과에 맞는 약을 드립니다.
중간에 응급실에서 연락이 오면 응급한 환자를 만나 처치를 하고 필요한 처방을 하고 진료실로 돌아옵니다.
쉬는 시간에는 다른 과에서 의뢰한 환자를 만나고, 내과적인 의견을 전하거나 처방을 합니다.
근래 들어 하루에 10분 이상 쉬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운이 나쁘면 점심을 먹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딸아이는 식사도, 샤워도 얼른 하라고 조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대충 먹고, 씻고 아기와 놀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잠에 듭니다.
이런 매일이 때론, 버겁게 느껴집니다.
좋은 직업이, 안정적인 수입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라 믿고 달려왔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외국 연수를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중의 행복을 위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행복하기보다 지치도록 반복적인 매일이, 사실 당황스럽습니다.
더 무엇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 부른 소리를 한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척, 여유 있는 척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공허하고 피로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절망적이던 환자가 회복됐을 때,
맛있는 점심을 먹을 때,
딸아이가 웃을 때,
사고 싶었던 셔츠를 샀을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찰나의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떠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먹빛 하루의 모서리가 화사하게 물들기도 합니다.
저는 아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고, 스스로 아픈 사람이 되어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쁘고, 때로는 사치스럽기까지 한 일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지만 기쁜 순간들, 당연하지만 감사한 사실들을 계속해서 곱씹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제가 아는 유일한, 행복해지는 방법입니다.
뭐 이런 것을 글로 쓰냐, 싶을 정도로 사소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최근에 좋아하게 된 이진송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작가란 1절만 하지 않는 법이다.'
네, 그럼 저도, 용기 내어 2절 3절 앵콜까지 불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