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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월화 Aug 24. 2022

가을의 질감

좋은 선물의 조건


좋은 선물의 조건이란 무엇일까요?

예상치 못했지만 불쾌하진 않을 것,

말하지 못했지만 원했던 것일 것,

부담스럽지 않을 것,

등이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날씨는 분명, 완벽한 선물입니다.



출근길이 기분 좋은 직장인은 단 한 명도 없다에 제가 지금 먹고 있는 리콜라 캔디를 걸겠습니다.

하지만 문 앞을 나설 때 불어주는 쾌청한 가을바람은 불쾌함을 잠시 잊게 해 줍니다.

좋은 날씨를 따라 하기 위해 에어컨, 선풍기, 온열기 등 수많은 장치들이 있지만

지구가 불어주는 바람과 온도, 습도만큼 쾌적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날씨는 전기료도 난방료도 들지 않는 공짜입니다.

제가 또 공짜 좋아하거든요.



출근길에 길게 가로수길이 나있습니다.

가로수길 초입부터 차 문을 내립니다.

한동안 더운 바람이 불어 얼른 차문을 다시 닫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선선한 바람에 짙은 나무 냄새가 가득 불어옵니다.

가로수길이 끝날 때쯤이면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차 문을 닫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선선한 가을을,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봄을 그리워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름휴가 때는 겨울 나라로, 겨울 휴가 때는 여름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원했던 날씨를 당장 얻어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분간은 꼼짝없이 국내에서 다음 계절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계절을 불문하고 제가 좋아하는 날씨는 비 오는 날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일단, 환자가 많이 오지 않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모두가 차분하게 말하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평소에는 길거리를 가다가 아는 얼굴을 만나면 조금 어색한데,

비 오는 날은 우산이 날 막아주니 안락한 기분이 들고, 사회적 거리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은 운전하기에는 나쁘지만,

출근길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돼지국밥 시켜야지'하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의 따뜻한 음식은 맑은 날보다 일곱 배쯤 더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색한 사이에서도 날씨 얘기는 잘 먹힙니다.

날씨는 그만큼 모든 이들의 정서를 관통합니다.

그래서 첫 글로 쓰기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단히 참신하거나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힘든 소재입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가을이 다가오는 이 느낌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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