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for the music
학업이나 창작, 일을 하는 사람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몰두해서 해야 하는 사람,
놀건 놀면서 하는 사람,
업무 종류를 자주 전환해야 하는 사람 등등.
하지만 아직도 신기한 사실은, 음악을 듣는 사람과 안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 듣는 사람은 음악이 나오면 공부를 못 한다고 하고,
듣는 사람은 이어폰을 안 가지고 독서실에 온 날이면 하루 종일 금단 증상을 느끼다가 집에 일찍 갑니다.
저는 음악을 즐겨 들었고, 라디오도 자주 들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공간은 책상 위로 한정되었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만은 어디든 여행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음악 추천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사실 저는 다른 사람이 추천해주는 음악을 좋아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후진 음악을 좋아하다니 취향이 별로군'이라고 판단한 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사실 후진 음악 고급 음악이 따로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어쨌든 음악은 각자 취향 존중하는 걸로.
학창 시절에는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한 면이 컸는데,
점점 못하면 안 돼서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유급되면 안 돼서,
국시에 떨어지면 안 돼서,
전문의 면허가 없으면 안 돼서
공부를 계속했어요.
울면서 하기도 하고, 입원해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공부가 나를 쥐고 흔드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어요.
이어폰에서는 부드러운 위로의 재즈가 나오기도 하고,
쿵쿵거리며 그깟 시험 개나 줘버리라고 하는 듯한 힙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저를 여러 번 살렸습니다.
유년기에 언니와 한 방을 썼는데,
언니가 라디오를 즐겨 들어서 저도 따라 들었어요.
언니는 자정이 지나도 항상 라디오를 켜놨습니다.
우리 집의 평화는 술 취한 아버지가 귀가하면 항상 깨졌지만,
라디오가 켜져 있는 방안만은 평안으로 가득했습니다.
잠들지 않는 디제이가 있어서,
멈추지 않는 음악이 있어서,
어긋나지 않고 항상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음악인 셈입니다.
힘든 월요일이었지만
버거운 한 달이었지만
음악이 흐르는 한 늘 제 자리를 지킬 수 있겠죠.
오늘따라 음악에게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