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나의 재능
저는 하루가 100이라면 저는 99쯤을 자책하는데 쓰는 사람입니다.
그 환자에게는 이 얘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딸에게 한 번만 더 참고 따뜻하게 대해줄걸 등등.
참 의미 없는 습관입니다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네요.
아마 이렇게 태어난 것 같아서,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운동을 잘한다던가, 공부를 잘한다던가, 말을 잘한다던가 하는 누구나 생각하는 재능 말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참 살맛 나는 일일 것입니다.
발견은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더 짜릿합니다.
이를테면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던가, 가성비 좋은 구매를 곧 잘한다던가, 틀린 맞춤법을 잘 찾아낸다던가 하는 것 들 말이에요.
아무도 알아차리거나 칭찬해주지 않았지만 숨겨진 당신의 재능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저의 특이한 재능을 찾아보자면,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귀여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틀니를 빼고 합죽이 입을 하고 진료실에 온 할머니도,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지만 툴툴대며 약은 부지런히 타러 오시는 할아버지도 귀여워요.
할머니 할아버지 특유의 꼬순내도 좋아요.
때때로 진료 도중 미소가 새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제가 내과를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회식 때 간호사가 보청기를 끼고 오는 환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설명을 해야 해서 싫지 않냐고 물어서
'그래도 귀엽지 않나요?'
라고 대답해서 분위기가 싸 해졌을 때,
이 능력이 흔치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노력하지 않아도 환자를 귀엽게 느끼는 제가 부럽다고 합니다.
이런 하찮은 재능도 진료라는 귀한 일에 쓰이는 걸 보면,
각자에게 주어진 사소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재능이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자책을 잘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잘못을 잘 덮어 씌워요.
저도 자책만 하다 타인의 잘못을 덮어쓴 경험이 꽤 있어요.
그때 당시에는 억울해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적당한 대응은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 내 잘못이 아닌데 나를 탓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의 빨간불이 탁 켜지며 꽤 날카롭게 대처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분명 제가 사랑하는 사람일 텐데요,
저는 당신이 나쁜 사람들로부터 불합리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자책을 잘하는 성격,
소심한 성격,
할 말 못 하는 본인의 성격을 고치기 힘들다면
귀여워하는 마음을 가진 나,
나쁜 일은 얼른 털어버리려는 나,
유머를 잃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칭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매일의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결국 나의 이런 작은 재능들 덕분이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