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독한 사랑은 난생처음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있었다. 분명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그에 대한 마음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정말 그런 듯했다. 귀국한 동시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일들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며 다음으로 세운 가장 큰 목표를 향해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의 이름을 다시 보기 전까지는.
귀국 후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서로가 없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브리핑하는 것이었다. 그 일에 성실히 임하기 위해서는 나의 난데없는 폴인럽 얘기를 빼 놓을 수 없었기에 친구들이 흥미를 보이는 대로 열심히 그와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브로드캐스터인 양 풀어 놓았다.
사실 그것까진 정말 괜찮았다. 내게 벌어졌던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이고 꽤나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야기였을 뿐 그것 역시 끝난 이야기임은 다름없었으니까. 다만 그들에게 그를 향했던 내 마음이 얼마나 강렬하고 진지했던 것인지를 설명할 때마다 그때 그 시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호주에 있는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휘말려드는 느낌이 들어 종종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그래도 그것 말고는 한국에서의 일상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 어떤 것에도 다시 휘둘리는 일 없이.
그러다 그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게 됐다. 우연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가 인스타그램 상단에 떴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클릭한 것은 온전히 나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뜬 사진 하나. 아... 씨.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그를 돌연히 좋아하게 된 지 며칠 안 돼서 알게 됐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끝났구나 했고 우리 둘 사이에는 당연하게도 무엇이라고 할 게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은 나의 갑작스러운 돌직구로 하여금 돌아온 답변이었고 따라서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건 나도 알고 그도 알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료 사이였기에 다시 마주쳐야 했고 둘 사이에 있었던 이전의 일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넘기며 예전처럼 잘 지냈다. ‘예전처럼’이라고 명명하기에는 말에 어폐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문제는 나의 사랑이 내 예상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일도 드물지만 설령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빠져 있는 기간은 늘 길지 않았기에 이번 일도 그런 식으로 귀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난 뒤부터 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주체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그의 정인은 꿈도 꾸지 않았거니와 당시 나는 얼마 안 있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에게 애인이 있든 없든 그의 옆에 남고 싶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특히 나의 미래를 중히 여기기 때문에 나 아닌 누군가에게 신경을 쏟는 일에는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이 이는 탓이었다. 그런데 왜, 내 머리와 마음은 자꾸 당신으로만 가득차는 걸까. 가히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그와 얼굴을 마주한 어느 날 당신을 정말 많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당시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제정신으로 살아가기가 꽤나 힘들었던 나는 마음을 털어 놓는 것으로 치유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답했고 나는 웃음 섞인 짜증을 부리며 그 일과 관련된 대화는 일단락됐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