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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Nov 02. 2024

실패가 선물이 될 때

대상 수상을 예상한 대회에서 입상조차 하지 못하다

나는 승부욕이 별로 없는 편이다. 누구와 나를 비교하고 이기는 데에는 영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은 많아서, 한 번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 낼 것이라는 다짐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산다.


내 학창 시절은 그다지 탄탄대로 같지 않았지만 내가 해 내고자 하는 부분에 있어선 늘 성과를 보여 왔다. 최선을 다한 만큼 매번 그에 응당한 결과를 받았고,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자 하면 무조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통했던 기간이 워낙 길었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는 밴드부 보컬 오디션에 합격해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중학교 때는 어떤 카페의 소설 게시판에 글을 연재해 올리는 글마다 매번 좋아요 수 1위에 올랐다. 느닷없이 역사와 사랑에 빠진 뒤에는 혼자 한능검을 준비해 시험을 치렀고 1급을 따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글쓰기, 영어, 노래 등 다양한 대회에서 수상하며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한 대회에서는 언제나 대상을 탔다. 대학교에 올라가서 어렵지 않게 학과 1, 2등을 유지했고 그 덕분에 교직이수에 성공했으며 슬럼프에 빠져 공부를 놓은 시기에도 여전히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 먹고 준비하면 바라는 결과는 언제나 따 놓은 당상이었으므로, 나는 늘 그저 이미 이뤄진 것을 재현할 뿐이었다.


호주에 가기로 결심하고 돈과 체력, 영어 실력을 준비하는 동안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적어도 꾸준히 자금을 불려 나갔고, 체력을 키웠으며, 영어 실력을 향상시켰다. 내 마음이 온전치 않아도 내가 해 내고자 하는 부분에선 확실한 변화를 보이기 위해서 하루하루 노력했다. 그렇게 호주에 갔고, 내 인생 첫 좌절을, 그것도 수도 없이 겪게 됐다.


그 전에 절망 한 번 없이 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에 상을 타기도 했고 퍽 잘한다고 생각해 나갔던, 제법 규모가 컸던 시 낭송 대회에서는 입상조차 하지 못했고 가고 싶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2년간 쌓아올려온 생기부를 버리고 수능 공부에 1년간 전념해 치른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도 못 받았다. 그 외에도 자잘한 실패들이 있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당장 준비한 것은 다 못 보여 줬어도 어째서 그런 결과가 도출됐는지에 대해서 배울 점들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렇게 난 계속해서 성장해 왔고, 실패가 빛나는 성공도 많이 이뤄 냈다. 그러나 호주에서 겪은 좌절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기에 맥락을 달리 보는 것이다.


인생은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호주에서 제대로 배우고 그 어떤 것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겼다고 생각했다. 많이 힘들었던 탓에 극복하는 과정도 참으로 지난했지만 결국 나는 그 시기를 통과했고, 완전한 독립체로서 삶을 일굴 수 있어졌으니까. 그런데 인간은 괜히 망각의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 건지, 나는 또 자만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준비했던 것이 꽤나 많았다. 교환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한 토익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학원 영어 강사 일을 바로 구했으며, 말레이시아 영어 캠프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참여할 기회까지 얻었다. 그러는 동안 영어 스피치 대회도 알게 돼서 기간 안에 원고를 작성해 제출했고, 합격했다. 이어서 교환학생 면접에도 합격하여 해외에 다시 가게 됐고, 꾸준히 써 온 글들을 엮어 내 인생 첫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지난 두 달간 쉴 틈 없이 달려온 만큼 준비했던 모든 것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당연하게.


처음에 영어 스피치 대회에 참가한 목적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대회를 준비하면서 상을 타고, 상금을 받는 것이 되레 중요해졌다. 그래서 이 대회로 하여금 얻어낼 결과는 대상 수상과 그에 따른 상금 획득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탄 적이 있어 스피치에는 자신이 있었고, 지금까지 영어 스피킹 실력을 길러 온 것을 고려했을 때 영어로 말하는 것에도 문제 없었다. 대회 포스터에 적힌 주제를 보자마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고 대본도 1시간 30분 만에 다 썼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수정하고 제출했다. 학원 원장님과 연이 있는 교수님 앞에서 연습한 것 말고는 항상 혼자서 연습했다. - 타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문제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번 대회에서 입상조차 하지 못했다. 발표 초반에 순간 사고 회로가 멈춰서 몇 초 정적이 있긴 했지만 - 그 탓에 시간 초과 문제도 생겼다 - 이후로는 준비한 대로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 영어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다 참가했을 대회이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그럼에도 나에 대한 자신감이 과하게 넘치는 탓에 그 누구의 발표를 들어도 내가 대상 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정적으로 인해 대상 타기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당시 처음의 실수는 이후의 완벽으로 포장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지만, 심사위원단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단상에서 내려온 이후로 ‘1등 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리 그래도 최소 2등은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입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고 내용, 전달성, 발음 등 어느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음이 빚어낸 아주 뼈아픈 착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시상식 초반부터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시상은 당연히 아래순부터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장 인상적인’ 발표자에게 상을 수상한다길래 바로 대상에게 상을 주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때 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을 보고 그래, 한 번 텀 생긴 게 평가에 큰 영향 미칠 수 있지, 하고 울적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렸다. 곧바로 대상 수상자는 ‘대상’으로 운이 띄워진다는 것을 알게 돼서 그럼 그렇지, 하고 대상 시상 순서가 오기 전까지 내 발표 번호가 불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실제로 대상 시상 전까지 내 번호는 한 번도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망의 대상 발표만이 남았을 때에도, 내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으로서의 한 해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교내 좋은 수업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해 우수상을 탄 적이 있다. 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냈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크게 절망했었다. 이후 당해 수상작 파일에서 대상작과 기타 작품을 살펴보고 나서는 그 결과를 더더욱 납득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께 내 글을 보여 드렸을 때도 내 인생 가장 과분한 칭찬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때 얻은 교훈이 있다면 어떤 대회에서는 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상을 받은 이들의 형식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떠한 이유에서 상을 받을 수 없었는지 궁금해 심사위원단에 있던 원어민 선생님 두 분께 질문을 드렸고, 두 분은 각자 다른 이유로 내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첫 번째 분은 내 발표 능력은 좋았으나 내 이야기가 기억에 잘 안 남는다고 했고, 내가 선택한 주제가 퍽 민감한 것이라 잘 와닿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분은 내 이야기는 매우 좋았으나 내가 너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발표했다고 했고, 강조해야 할 부분에선 소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 지난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본으로 썼고, 말하기 대회인 만큼 여유롭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발표했는데 둘 다 틀렸던 것이다. 나를 보여 주려고 애쓰기 전에, 대회의 특성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가닿지 않거나 그것을 넘어 곡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꽤나 아프게 다가왔지만 이 부분 역시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고, 공식적인 자리이니만큼 너무 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영어를, 발표를 못해서 떨어진 것이 아님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너무 오래 절망해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고,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눈물에 아, 내가 지금 슬픈 거구나, 열심히 노력했고 그래서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돼서 많이 속상하구나, 하고 그냥 계속 울도록 냅두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떨어진 것이 오히려 잘된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너무 일이 잘 풀리기만 해서 내가 하는 선택, 내가 하는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단 걸 또 한 번 깨우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의 실패는 반드시 있어야 했고, 그러므로 괜찮다는 것.


나는 지금까지 나 잘난 맛에 살아 왔다. 과할 만큼 넘치는 욕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동기 부여로 바꾸어 주었던 것은 언제나 과거의 나 덕분이었다. 언제나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내가 목표한 바를 성실히 이루었고 내가 그것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것을 토대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삶은 마냥 게임 같은 것이 아니고, 삶을 살아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현실 속에서 내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은 과연 좋은 것일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분명 이 마음가짐이 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을 과신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지금 나는 콘서트를 보러 가기 위해 탑승한 버스 안에서 몇 시간 전에 일어난, 그러나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경험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감정을 갈무리하고 다음 여정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글 쓰는 것만한 테라피가 또 없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그 어떤 결과도 예상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끝에 다다르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 내가 그 일에 진심을 다한 것으로 충분하게끔. 삶을 성공과 실패, 성취나 좌절의 연속으로만 보기에는 즐기고 음미할 것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멋진 사람들과 긴장과 설렘의 순간을 함께하고, 내가 그간 준비해 온 것을 마침내 보여 주었다는 것. 또한 그것을 평가 받음으로써 새로이 배울 점들을 얻었단 사실에 더 집중해야지. 나의 삶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더 빛나는 순간을 위해서는 이러한 순간도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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