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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색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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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Sep 30. 2024

토익과 완전히 이별한 날

호주 워홀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토익을 치르며

날아갈 것 같다. 수능 이후로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단 한 번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혼신의 힘을 쏟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공부한 날은 고작 9일밖에 안 되지만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해 오던 영어 공부와 1년의 해외 경험을 통해 특별히 더 공부할 건 없다고 판단되어 그냥 기출만 계속 풀고 오답 노트와 행동 강령을 정리해 왔다. 그리고 대망의 시험 당일, 고사실에 입실한 후에는 시험 시작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긴장 해소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10시 8분에 시험은 시작되었고 나의 또 다른 축제 역시 시작되었다! 그간 기출을 풀어 오며 만들어 온 나만의 루틴대로 문제를 풀었고 연습 때와는 달리 시간이 부족해 읽지 못한 마지막 지문 빼고는 거의 모든 문제의 답을 확신에 찬 상태로 골랐다. - OMR 마킹하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 마지막 직전 지문의 문제까지 다 풀고 급하게 OMR 작성을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마킹을 했다. 문제를 벌써 이만큼이나 다 풀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남았다고 자축하던 몇 십 분 전의 나를 세게 한 대 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시험이 종료된 후 나는 어떤 것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숨을 고르고 지금부터 시작될 또 다른 여정을 떠올렸다. 이게 행복이지. 이게 바로 사는 재미야. 이 맛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정말이지 삶에 진심이 안 될 수가 없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과 마침내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늘 그랬듯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시험은 끝났다.


원래는 이듬해 1월에 몇 년 전에 들었던 토익 현장 강의를 다시 듣고 시험을 치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더 이상 한국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아져 곧바로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아보았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토익 690점 이상의 최소 요건을 채워야 했는데 호주에 가기 전 기출 한 번 풀지 않고 본 시험에서 650점을 맞았던 터라 빠르게 점수를 만들어 와야 했다.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날짜는 9월 29일 오늘이었고, 시험에 접수하자마자 기출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에 사 두고 한 번도 풀지 않은 문제집 속 8회하고 반절의 기출을 풀었는데 매 테스트마다 LC와 RC 각각 100점 만점의 90점대가 주로 나와서 만점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만점을 못 맞아도 이미 엄청난 성과를 이룬 거나 다름없었지만 - 앞서 언급했듯 호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토익 시험에서 나는 650점을 받았고 이후로 토익을 위한 공부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언제나 욕심이 큰 편이기에 이번에도 이미 이루어 둔 것에는 별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쨌거나 독학만으로도 높은 점수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해서 주어진 시간 동안 기출 풀고 오답 노트 작성하기만을 반복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언제나 노이즈가 섞인 버전의 LC MP3와 RC를 위한 노이즈 섞인 75분짜리 asmr 영상을 들으며 문제를 풀었다는 것 정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9번의 프리테스트 때도 받아보지 못한 만점은 실전에서도 받기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시간 부족으로 풀지 못한 마지막 네 문제는 B로 통일해 찍었고 마킹 이후에 검토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LC에서 애매하게 답변을 고른 문제가 초반에 몇 있었고 하니 LC에서의 만점은 확실히 어려울 것 같고... RC에서의 만점은 고대해 볼 만했지만 마지막 지문만은 다 읽지 못하고 문제를 풀었기에 그 역시도 바라긴 틀린 듯하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환희로 가득찰 수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쌓아 온 영어 실력을 정말 제대로 발휘했기 때문이다. 마킹 연습은 따로 하지 않았기에 시간 조절을 매끄럽게 하기는 어려웠지만 - 늘 기출을 다 풀고 10분에서 15분 정도가 남았어서 그때 마킹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200문제의 답을 옮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게 했다... - 듣기나 읽기 이해에 거의 어려움이 없었고 전략대로 착실히 움직였다. 말 그대로 정말 전력을 다했고,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하기란 불가능했으리라 단언한다.


모든 게 결국엔 끝이 나듯 귀국하고 나서 첫 번째 목표였던 토익 시험도 막을 내렸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지금의 마음처럼 그저 후련하기만 할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더 한다 한들 그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기란 어려울 것이고 토익에 관련한 노력은 더 이상 일체 하고 싶지 않다. 이것 말고도 준비해야 할 중요한 게 많고 그 점수로도 앞으로 다양한 곳에서 요구할 자격 요건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나의 오만하지만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잘 가 토익. 함께하는 동안 좀 더 다양한 문장 구조를 익힐 수 있었고 문장 구사력을 높일 수 있었어. 시험료가 너무 비싼 건 정말 밉지만... 이번이 마지막이고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증빙 자료가 될 테니까 깔끔하게 헤어져 줄게.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 그렇지만 돈 없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방편을 마련해 주면 안 되겠니? 52,500원은 진짜 아니잖아... 아니다. 이만 말 줄일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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