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디오키드 Sep 09. 2021

너에게

  이렇게 글로 남기는 건 어쩌면 처음일 거야. 우린 글로 소통하는 것보다 행동과 몸짓 그리고 너는 알아듣지 못할 나의 말로 이야기를 많이 했을 테니. 가장 먼저 안부를 묻고 싶다. 잘 지내니? 거기서도.

 우린 참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어떠니? 많이 부족한 오빠였을지도 모르지. 내가 생각해도 난 많이 부족하고 나태한 인간이었으니까. 네가 원하는 것을 많이 주지도 못한 내가 혹시 여전히 미울까? 너는 나에게 와서 행복만을 주고 갔는데 내가 너에게 줬던 건 무엇일까? 너는 뭐라고 생각하니?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너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난 왜 늦게서야 알았는지. 너의 시간은 나보다 더 빠르다는 걸 왜 몰랐는지.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 한걸수도 있겠다. 네가 없는 나의 삶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나랑 비슷하게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내 욕심인 걸까.

 검은 흑요석처럼 빛이 나던 너의 눈이 탁해졌을 때 난 알았어. 너는 이제 힘들어진다는 걸. 그래도 넌 한결같았어. 항상 까칠한 성격에 예민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네가 좋았다. 가끔 그런 성격 때문에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그냥 좋았어. 이젠 너의 잔소리는 들을 수 없겠지.

 하루아침에 말라가는 너의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어. 나는 그런 오빠였으니까. 병원에서는 당뇨라는 판정을 내렸고 평생 시간을 맞춰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저주를 내리기도 했지. 그런데 있잖아 네가 워낙 예민해야 말이지. 주사 한 번 맞추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어. 날 물고 할퀴니까 가끔은 그 시간이 두렵더라. 그래서 가끔은 네가 미웠어. 어딜 가든지 너의 주사 시간에 집에 와야 했고 또 주사를 놓기 위해 너와 사투를 벌여야 하니. 이런 내가 많이 밉니?

 너에 대한 것 때문에 가족이랑도 많이 싸웠는데 혹시 네가 들었을까 봐 겁이 나. 너의 잘못이 아닌데 네가 위축되었을까. 이기적인 나와 가족들의 다툼이기에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어. 너는 나에게 고통의 존재가 아닌 축복이었으니까.

 너의 마지막 순간, 내가 너를 찾아가자 눈을 감던 네가 번쩍 눈을 떴었는데 기억하니? 그건 혹시 내 얼굴과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가기 위했던 행동이니? 그러곤 너는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를 떠났잖아. 조금만 더 보고 가도 되는데 너 참 급하더라. 많은 병원비가 부담이었을까?

 여전히 네가 생각나. 네가 입고 있었던 옷도 버리지 않았어. 너를 생각하려고.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극복해야 된다고 위로하더라. 근데 알잖아. 너를 잊는 건 너무 나쁜 일인 거. 너를 잊어버리고 추억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무 나쁜 놈이 된 거잖아. 누군가는 너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일은 내가 해야만 하고. 너의 기억으로 난 버티고 살아가고 있어. 거긴 어때? 지낼 만 한가? 비좁은 아파트보다 좋을 거 같아. 거기서 강아지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만약에 말이야, 날 다시 만난다면 나에게 달려와주겠니? 아프지 않은 몸으로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만 해줘.


 꽤 나쁘지 않았어. 너와 함께여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