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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디오키드 Sep 09. 2021

너는 겨우 자라 내가 되겠지

이지원 감독의 <여름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는 멈추지 않는 경주와도 비슷하다. 젊은 세대는 원하지 않지만 불공평한 시스템이라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뒤처지지 않게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한 마리의 경주마가 되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도태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여름밤> 속 소영은 오히려 반대의 선택을 한다.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것 대신 과외생 민정에 입장에서 '공감'을 하며 그녀에게 위로를 건넨다. 여전히 '무한한 경쟁' 속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달려도 보이지 않는 결승점


 취준생으로 살아가는 소영과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민정은 끝이 없는 경주에 여전히 남아 뛰고 있다. 계속되는 불합격 통지를 받는 소영은 취업을 위해서, 그리고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뛰면서 과외비를 모아 공부하려는 막연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해보지만 쉽지 않다. 청년들이 바쁜 현실을 살아가는 내용은 자칫 뻔 한 내용이라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을 빠른 호흡과 편집을 통해서 오히려 상황의 긴박감을 더해준다. 그녀들이 사는 모습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서 현실의 고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민정이 달리는 모습을 롱 샷을 통해 자주 보여주는데 이는 현실에서 발버둥 치며 '경쟁'을 이어나가려는 민정의 노력을 달리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서로의 출발점은 제가각이지만 불공평한 경주는 시작이 되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결승점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뒤쳐지는 기분만 들지만 이 사회가 정해준 시스템을 바꿀 수 없기에 그녀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계속 달려나간다.


 그녀들을 붙잡는 수많은 장애물



 그냥 달려도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 그녀들에게는 온갖 장애물들이 가로막기 시작한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민정에게 토요일 근무가 주어지고 이것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소영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편의점 대타를 구했지만 면접이 생겼다며 못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취소하는 모습은 무한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민정과의 금요일 과외를 위해 발표가 잡혀있는 스터디 그룹을 못나갈 것 같다고 말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소영이 이기적이라며 비난이 섞이고 날선 말을 내뱉는다. 소영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장면은 대부분 한 프레임에 같이 담지 않거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사람들과 소영의 이해와 소통의 부재를 뜻하며 서로의 입장에 대해 ‘공감’의 부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특히 스터디 발표를 부탁하는 대화 장면에서 마주보고 있어야 자연스럽지만 오히려 인문들이 서로 등지고 있는 느낌을 보여준다. “너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라는 대사는 이해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준다. 홀로 남겨져 벤치에 앉아있는 소영의 뒤로 보이는 높은 빌딩들은 사람들의 소통을 막는 벽처럼 느끼게 만든다. 친구와 다르게 여전히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소영의 모습을 불안정한 화면 구도와 도서관의 흰 벽은 그녀가 느끼는 좌절감과 불안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영의 P.O.V에는 도서관에서 그녀와 같은 처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는데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영은 고립되고 외로워 보인다. 오히려 ‘경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에게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민정에게는 가난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그녀의 장애물일 것 이다. 반지하 좁은 집에 소주병이 나뒹굴고 정리정돈이 하나 안 된 집에서라도 수업을 들으려 하지만 술에 절어 문도 잠그고 자버리는 무책임한 아버지는 민정의 발목에 채워진 모래주머니와 같다. ‘경쟁’에서 한참이 뒤처진 그녀에게 여러 장애물들은 그녀를 넘어뜨려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2인 3각 달리기처럼



 남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서관 자리에 책을 올려두는 모습을 보이며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소영은 민정과의 과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입은 채 민정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굳게 잠긴 문과 계단에 앉아있는 민정의 모습을 맞이한다. 화가 나 소리 지를 법 하지만 소영의 선택은 함께 걷기였다. 따뜻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오고 주황빛 가로등 밑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소영과 민정의 투 샷은 ‘공감’이라는 줄로 서로의 발목을 묶은 채 움직이는 2인 3각 달리기처럼 보인다.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경주에 홀로 전력질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기대에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완주하려는 의지를 관객들에게 느끼게 해준다. 위태해보였던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수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이지만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너는 겨우 자라 내가 되겠지

 

 


영화 속 소영과 민정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무척 닮아있다. 그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공감’은 닮은 그녀들의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과외 도중에 쪽잠을 함께 자는 모습과 가방을 메고 함께 걸어 나가는 모습을 투 샷으로 담은 것은 닮아있는 그녀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쓰였을 것 이다. 꿈도 없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라는 민정의 말은 어쩌면 소영이 민정과 비슷한 나이 대에 가지고 있던 생각 일 것 이다. 자신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민정을 바라보는 소영의 눈빛에는 연민과 걱정이 담겨있다. 영화 속 거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자신과 달리 웃으며 달리는 민정은 다르게 자라길 바라는 소영의 바람은 아닐까?


  

   


 

 <여름밤>은 극단적인 경쟁으로 변해버린 현대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엔딩 크레딧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학생 단편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보통의 단편영화와 달리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사람들로 가득 채우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과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손해 보지 않도록 살아가는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도 보여 씁쓸하기도 했다. 경쟁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남을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밟고 올라가는 '경쟁'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펼치는 선의의 경쟁쟁을 지향하는 쪽으로 사회가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잔혹한 경주에서 홀로 외롭게 사투를 벌이며 달리고 있을 그들이 넘어지더라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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