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재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의 여름
"춘천에 가자, 꼭 데려가고 싶은 카페가 있어. 되도록이면 8월이 오기 전에"
군산에 사는 친구 S를 만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 S를 조르는 건 J가 도맡았다. 날짜를 잡고 숙소를 결정하고 교통수단을 선택하는 데까지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결정이 빠른 편인 나와는 달리 두 친구는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군산에서 오는 S와 다소 먼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하는 나를 위한 배려의 말들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툴툴거림으로 각자의 애정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했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고 이십 대의 모습을 기억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행실과 엄마가 되어서 시나브로 변해갔던 모습을 지켜봤다. 어릴 적 모습들은 결국엔 웃음거리의 소재로서 우리의 대화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서로의 놀림거리로 사용하며 우린 애틋한 그 시절을 끄집어내 마음껏 떠들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임을 그렇게 확인하고 인정했다.
서로 다른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어떤 자세로 수업을 들었는지, 얼마큼 졸고, 쉬는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는지 만져지는 추억이 없어도 우린 '전부'를 공유한 거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떡볶이를 먹은 게 다지만 이미 모든 것을 공유한 거 같았다. 우린 왜 그렇게 서로의 존재가 특별했을까. 분명 사춘기를 겪었을 테고 18살의 나이가 가지고 가기에는 힘겨움들이 각자의 가슴께에 있었을 텐데, 우린 그 언저리조차 가지 않고 그저 떡볶이를 먹으며 그 나이답게 웃어 보였다.
"너 그때 우리랑 목욕탕 안 가고 도서관 가서 공부 안 하고 잤지?"
"너 고등학교 때 날라리였지?"
"너는 그때부터 뭔가 특이했어"
이제 와서 웃음 띤 목소리로 가볍게 던진다. 무지막지하게 흐른 시간 앞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무언가를 가슴에 지닌 채 변해버린 얼굴로 서로의 삶을 마주 할 수 있어 벅차오른다.
춘천의 날씨는 흐리다 맑기를 반복했다. 꼭 때때로 변했던 우리의 감정처럼. 무겁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우리의 모습 같기도 했다. '정답'을 강요받던 시대를 건너와서 삶의 많은 부분은 정답을 찾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의 편협한 방식에 익숙했다. 하룻밤 묵기로 한 숙소에 위치한 야외 카페에서 허기진 배를 적당히 채웠을 때쯤, J가 S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야?"
"현모양처"
그게 정말 꿈이냐고 묻던 J. 이미 꿈을 이뤘다고 말했던 J. 여전히 확실치 않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J와 나. 분명한 선으로 보이진 않지만 가다 보면 길이 보이고 흐릿한 선들이 완전한 선을 이룰 거라는 확신으로 나아가는 J와 나는 그때 분명 많은 생각이 왔다가 흩어졌을 테다. 사랑스럽기만 한 S의 삶이, 나는 너처럼 훌륭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해내지 못할 거라는 존경심이 물밀듯 밀려왔다. 눈앞의 청평호수가 비엔의 메콩강같이 보이는 착각을 부여잡고 별 없는 까만 밤을 올려다봤다. '아름다운 인생이야' 절로 터져 나오는 밤이었다.
춘천의 목적지는 시한부 공유 서재 '첫 서재'를 가기 위해서였다. 첫 서재를 알게 된 건, 휴직계를 내고 여러 이유로 복잡한 심경이 되어 버렸던 재작년 겨울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첫 서재를 차린 브런치 나묭(책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의 나형석 작가님) 작가님의 글을 보다가 덜컥 눈물이 났다. 다정스럽게 적어 내린 글 속에 파묻힌 정서와 감정들. 휴직기간 동안만 문을 열기로 한 카페 사진들과 글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모습 속에서 수많은 삶의 노력과 수고와 고난을 헤아리다 줄줄줄 눈물이 흘렀다. '북 스테이'라는 문구에 한동안 눈이 머물렀다. 4박 5일 동안 다락방에 머물 손님을 받는 공간. 당연히 받아야 할 숙박 빈 5년 뒤에 '돈이 아닌' 것들로 받는 곳. 돈보다 더 가치로울지 모를 꿈에 무게를 더 싣는 곳. 이곳에 머무는 상상을 하다 또 눈물이 났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이런 생각을 실행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한없이 커져서는 그날은 새벽까지 작가님의 글을 더듬거렸었다.
김유정역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첫 서재로 향할 때쯤,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첫 서재 근처 언덕배기에 주차를 할 땐 더 거세진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눈앞에서 사라진 친구들을 찾다가 살짝 올라온 화를 못 누르고 팩팩거렸다.
"어디야? 왜 내리기만 하면 사라져. 내가 운전기사냐?"
비 맞으며 나온 J를 보고 또 미안해서 구시렁구시렁.
"왜 비 맞고 나왔어"
속상해서 또 화가 났다.
첫 서잰 사진보다 더 근사했다. 공간 하나하나가 서재지기님과 닮아 있었다. 아늑하고 정갈한 곳. 종이책의 냄새와 책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의 사유와 사색이 가득한 곳. 2시간의 공간 값 4000원(1인 기준)을 내거나 부치지 못한 손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2시간의 공간 값을 받지 않는 곳. 우리는 커피와 함께 씹어 먹을 간식거리를 추가 주문한 뒤 우리만 앉을 수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세차게 쏟아졌던 비는 그치고 툭툭 한두 방을 내리는 비가 그 공간과 바깥의 풍경을 더 운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편지지 좀 주시겠어요?"
"책을 샀어요. 사인을 받고 싶었는데 깜박 놓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말끔하고 깨끗한 인상을 풍기는 작가님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는데, 작가님은 더 작은 목소리로 더욱 공손하게 이야기하셔서 깜짝 놀랐다. 작가님 브런치 독자고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고, 구독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까지 말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부치지 못하는 손편지를 쓰는 동안, 내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옆에서 쉴 새 없이 조잘거렸는데 그 조잘거림 덕분에 터져 나오려는 눈물은 돌연 낄낄 웃음으로 바뀌었다. 눈물은 눈치 없이 올라오는데 친구들이 옆에서 너무 행복하게 떠들어 주어서 슬픔과 행복이 마음껏 오르락내리락했고, 이 순간 나의 워너비 빨강머리 앤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앤의 말은 첫 서재와도 닮아 있다.
"만약 돈이 어마어마하게 있다고 해도,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몇 개씩 있다 해도, 아름다움을 이 보다 더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야"
'서투름이 쌓인다' 문구가 박힌 책갈피를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서투른 인생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얼마나 서투른 사람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실수투성이에 엉망진창 머릿속과 철들기를 거부하며 짐짓 어른답게 살고자 발밑에서부터 노력하는 중인데, 도무지 티가 나지 않아 안타깝다. '이별'하지 않고 사는 것이 있을까. 곧 살아지는 첫 서재가 정해진 이별 앞에 더 생생하게 빛난다. 서재지기님과 짧고 간결한
인사를 주고받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등 뒤에 첫 서재를 두고 걸었다. 부디, 앞으로 닥칠 슬픔과 고난을 함께 넉넉하게 이기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바라고 바랐다.
싸우지 말자고 꼭꼭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했는데, 우린 정말 싸우지 않고 시종일관 즐거웠다. 나보다 먼저 너를 생각하는 우리가 있어 각자 감사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해 본다. 체중감량을 위해 식단을 해야 했던 나를 배려한 친구들. 그런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나. 서로 오고 갔던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우린 각자의 마음 안에서 감사했고 미안했다. 친구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잔잔한 행복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기를 바란다.
이날의 화사한 여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한다. 편안한 자세로 놓여 있는 이날의 우리를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한다. 새삼 우리의 관계를 감사히 끌어안았던. 네 불행이 내게도 얼마나 아픈 불행이었는지 깨닫고는 네 행복을 마음껏 응원했던 춘천에서. 첫 서재에서. 끝까지 울지 않고 썼던 편지에 날짜를 기록하고 이름을 적었던 날. 촉촉하게 젖은 길을 셋이 발맞춰 걸었고, 하늘이 정말 정말 하늘하늘하게 개었고, 서로를 생각하다 배가 불렀던 우리의 여름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