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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Feb 16. 2023

인생 국수

라오스 시절에

 라오스행 비행기가 곧 있으면 착륙할 거라는 기장의 목소리에 심장이 얕게 뛰기 시작했다. 늘 비슷한 시기와 시간에 도착하는 라오스. 그리고 당연한 존재, 여전한 J와 함께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산을 힘겹게 넘어 되찾은 하루가 이토록 귀했다.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비엔에 마침내 도착했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골프 여행객의 짐들이 줄줄이 나온다. 내 캐리어가 실리지 않은 건가 의심이 들 때쯤 시커먼 천에 둘러싸인 캐리어를 허겁지겁 들어 올렸다. 밤이 잠긴 비엔의 밤공기에 눈물이 날 뻔 해도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날 거 같아요" "왜?" 시큰둥한 N이 반갑다. 왓타이공항으로 마중을 나와도 먼저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 N. J와 나는 언제나 그 작은 공항에서 N이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는데 한 번도 단번에 찾은 적이 없다. 두리번거리며 찾다 보면 멀리서 다가오는 차가 보이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N이 반가우니 꼭 따뜻한 포옹을 나눠야지, 생각만 하고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는 이유였다. 차를 세우고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비엔의 밤공기를 가른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야 한다.  

 

 내내 묵고 싶었던 L호텔은 예상대로 뷰가 끝내줬다. 식탁으로 변신한 테이블에 소소한 음식들을 차렸다. 라오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소주와 비어라오까지 올려놓으니 여느 만찬이 부럽지 않았다. 시간이 둥글게 흐른다. '우리'라는 만남이 이곳 비엔에서 완성되면 나는 너무 행복해서 나를 잊고 내일을 잊고 어제를 잊어 갔다. 빈속을 반쯤 채웠을 때 발코니에 펼쳐진 메콩강을 가만가만 바라봤다. 눈이 시릴 때쯤 메콩강에 반사된- 나란한 저 불빛이 뭐냐고 센 발음으로 물었다. J와 N은 거의 동시에 그걸 정말 모르냐는 듯 비아냥 거렸다. 정신이 번쩍 든다.(초록나무가 초록나무인지 헷갈리는 때도 있다!) 나른해진 기분이 수채화처럼 번졌을 때 'Dessert'를 틀었고 고개는 까딱까딱,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이 없는 모습을 그 둘 앞에서는 꼭 하게 되었는데, 그런 내게 N은 다음 날 썬타라에서 말했다.

  "받아 주는 걸 알아서 그런 거야" 

  순간 그의 예리함에 놀라 마음이 커지고 이리저리 굴리던 눈동자를 멈춘다.

 

  늦은 잠을 깨우고 여름옷을 입고 다시 만난 N이 데려간 국숫집은 어느 도로변에 있었다. 나는 라오스나 태국이나 출입문 없이 들어가는 그들만의 식당이 좋았다. 문을 열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식당- '모두'에게 열려 있는 식당- 눈인사를 하고 늘 먹던 음식을 주문하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흘러넘친다. 11:30분이 되면 근무복을 입은 채 일을 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현지인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서너 명씩 앉아 각자 다른 재료가 든 국수를 주문하고 그들의 말로 떠드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 일상이 신기해 빤히 쳐다보다 민망해진 나는 눈길을 거둔다. 여행잔 J와 나 단 둘 뿐인 식당. N은 늘 한국 사람보다 현지인이 대부분인 식당엘 우릴 데려갔는데 가는 곳마다 엄지를 추켜 세워도 모자랄 만큼 맛집이었다. N이 능숙한 라오말로 주문한 국수(고수를 뺀)는 하얀 국물에 통통한 면(태국의 끈적 국수와 비슷한)과 뼈에 살이 붙은 고기가 전부였다. 테이블에 놓인 숙주와 소스를 취향껏 넣고 잘 저어 국물을 먼저 입에 가져간 순간, 탄식이 나온다. 면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순식간에 순삭 하고는 N의 고기도 뺏어 먹고 나니, 만족한 배가 거만하게 부풀었다. 연신 맛있다고 한 J는 아주 천천히 국수를 먹었는데, 그 모습은 나만 아는 모습이기도 하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짓는 표정과 음식을 먹는 속도 같은 것.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거 같은데... 라오스에 있는 N은 늘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엄마가 해 준 김장김치와 구수하고 얼큰한 국밥 같은 것. 또는 잘 익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 같은 것.

  그 국숫집에 또 가자는 말에 N은 말없이 어딘가에 차를 세웠었다. 아후 밥은 먹어야지, 하며.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봉지 안에는 김밥과 예상치 못한 동태 전이 들어 있었다. 동태 전을 꺼내며 "엄마네에 동태 전이 있길래, 얼른 샀어" '엄마네'라는 간판도 보지 못했는데 그는 엄마네라고 말했다. 그 옆 가게 이름은 '아빠네'인데 주로 한식을 파는 곳 같았다. 마침 동태 전을 팔고 있었다는 엄마네에서 얼른 샀다는 그의 말에 국수를 먹다 웃음이 큭큭 올라와 죽을 뻔했다.  

  며칠 국수와 신닷만 먹은 N은 참다 참다 이제 좀 한식 좀 먹자! 고 했고, 국수도 많이 먹고 신닷도 많이 먹은 J와 나는 기꺼이 "좋아요"를 외쳤다. 비엔의 한식집 이름은 '요리'였고 넓은 주차장에 큰 유리문, 튼튼한 테이블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갖추고 있었다. 한국인가 싶을 만큼 메뉴가 다양했고, 맛도 제법 좋았다. 바삭한 파전은 자꾸 젓가락이 갈 정도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 국숫집이 더 최고란 거다. 플라스틱 테이블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에 오로지 국수만 파는 문이 없던 국숫집이 내 여행과 비엔티안을 더 풍족하게 채우니까.



  한국으로 돌아와 냉동삼겹살이 유난한 소리를 내며 익어 가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J에게 확신에 차서 말했다.

  "J야 방콕의 끈적 국수보다 비엔의 국수가 확실히 더 맛있어. 뭐랄까, 국물이 더 진하고 깊어. 조미료 맛이 아니야. 고기는 너무 부드럽고 입에 가져가는 순간 뼈와 살이 분리되잖아. 눈으로 봤을 땐 질길 거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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