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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1. 2023

5. 싸움의 기술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그렇다면 동거는?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S도 하늘 아래 다 같은 인간이었다. 동거 생활 동안 S와 나는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일들로 많이 싸우고는 했다. 영혼의 짝짜꿍이라고 생각했던 그와 나도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연애 초반 자주 투덕거렸던 이유는 보통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S는 겉모습은 완벽한 동양인이지만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네덜란드 사람에 더 가까웠다. (나는 그런 그를 '바나나'*라고 놀리고는 했다)  

 

 네덜란드어에는 영어의 Could나 Would와 같이 말을 공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존댓말은 당연히 없다. 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말하면 무례한 거야, 저렇게 말하면 공손한 거야 구분하지를 않으니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에게는 에둘러 말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 그도 더치답게 그의 의견을 나누는데 주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수리, 화장이 달라졌네?"

(알아차려서 고마운 마음으로) "응, 오늘은 섀도우를 다른 색으로 발라봤어. 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눈에는 어때?" (예쁘냐고 묻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그전 화장법이 나은 것 같아. 네 얼굴에는 이런 스타일이 잘 안 어울려. 오히려 생기가 떨어져 보이는 것 같은데?"

"...(빠직)"

"아마 네 화장 스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 (유튜브 링크를 여러 개 보내주며)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것은 어때?"

"...(다시 빠직)"


또는,


"나 옷 사려고 하는데 1번이 이뻐, 2번이 이뻐?" (둘 다 예쁘냐고 묻는 말이다. 맘에 들지 않았으면 사진조차 안 보냈다)

"흠.. 내 생각에는 둘 다 별로야. 수리는 상체가 빈약하고(빠직), 하체에 더 곡선이 있으니까 조금 더 피팅되는 옷이 나을 것 같은데?"

"...(빠직)"


 한국에는 '팩폭'이라는 말이 있다. 팩트를 말하는 것이 폭력으로까지 인식되는 문화에서 자란 나에게는 이런 그의 직설적인 말들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문화 차이로 일어나는 다툼은 애교 수준이었다.  


 S와 내가 자주 다투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S는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라서 보통 서운한 쪽은 나였는데, 이런 경우에 나는 상황을 회피하고, 불편한 대화는 최대한 미루는 쪽이었고, S는 바로 직면하고 대화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주제에 감정 표현은 매우 서툴러서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으면 입을 꾹 닫았다. 이건 나의 몹쓸 버릇이었는데, 과거의 연애에서도 나는 항상 그랬다. 잔 상처를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이별이라는 필살기를 날리는 것이 나의 싸움의 기술이었다. 나의 엑스들은 내가 이별을 고할 때마다 하나같이 뜬금없어했었다. 어쨌든 이건 나 나름의 갈등의 해결 방식이었다.

 S에게 화가 나면 일단 입을 꾹 닫고 방에 콕 박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을 때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고, 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이 방법이 S에게는 도저히 먹히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쟤가 또 왜 저럴까'하며 모른 척하고 넘어갈 법한 문제도 그는 그냥 넘어가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문제가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하는 성격이었다. 이성적인 대화는 필수였다. '내가 왜 화가 난 건지 알아야 본인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며 나를 끊임없이 귀찮게 했고,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냥 연애만 하는 사이라면 조금 쉬었을까. 내가 그의 MBTI가 ESTJ였다는 것을 진즉 알았다면 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동거를 하면서 이 점은 정말 해결하기 힘든 난제 중 하나였다. 둘만 있는 세계에서 나는 도망가기 바빴고, 그는 나를 끊임없이 쫓았다.


 몇 번의 밀고 당기기 끝에 우리는 결국 타협점을 찾았다. 첫째로 우리는 일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맞고, 다른 한 사람이 틀리다는 것이 결정 날 때까지 싸우기보다는, '그래, 너한테는 네가 맞고 나한테는 내가 맞다'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한 후에는 거기서 딱 한 걸음씩만 양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S는 갈등이 생기면 꼭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하는 것은 양보 불가이지만, 내가 화가 나면 그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다. 나도 서운하거나 섭섭한 일이 있으면 내 감정을 너무 감추려고만 하지 않고 언제든지 준비가 되었을 때 S에게 말하기로 했다.

 그는 재촉을 멈추었고, 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한 번에 딱 한 걸음씩만 양보하니 갈등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솔직해졌고, S는 가끔씩은 눈치껏 미안하지 않는 일에도 미안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커플이 헤어지는 이유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성격 차이'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인데 성격은 차이가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나는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는 것의 실상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의 모국이 아닌 곳에서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에 갈등 해결 방식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사람은 결국 서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양보가 쉬워지고 자존심을 한 번쯤 내려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커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다툰 커플이 모두 헤어지지는 않는다. 다들 나름대로 한 발짝씩 양보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에 이별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동양인이지만 백인 문화에 더 익숙한 사람들을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라고 하는데, 다소 인종차별적인 단어이므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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