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이야?”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본 적은 있지.”
이런 대답들이 대부분이었다. 가깝지만 먼 그곳. 북한 사람과 만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여행 중 딱 한 번 시리아에서 북한 사람을 만났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박물관은 꼭 가야 성이 차는 성격이다. 다마스쿠스에서도 국립 박물관을 갔었다. 여전히 폭염이 지속되었다. 이 곳은 열기는 슬리퍼가 녹지 않을까 할 정도로 뜨거웠다. 볕을 피해 그늘에 숨어도 온몸은 땀이 흥건했다. 숨을 들이 마실수록 뜨거운 기운이 기운을 빠지게 한다. 길가에서 산 얼음물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물로 변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데, 일주일이 지나도 중동의 여름은 당최 적응이 안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더위를 피하기에는 박물관 만한 곳이 없다.
“저기 에어컨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 마냥 에어컨으로 달려갔다.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잖아.”
에어컨은 장식품일 뿐이었다. 전기가 귀한 나라이기에 에어컨은 장식품일 뿐이었다. 대신 천장 위에 있는 낡은 선풍기가 뜨거운 열기를 전해준다. 여유가 있어야 주변의 것들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더위에 지쳐 버린 나다. 박물관에 있는 유구한 역사적 산물들이 돌기둥, 돌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은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비의 노래만 맴돌았다.
‘다시 나갈까?’
‘그래도 낸 돈이 얼만데.’
‘돈 몇 푼 때문에 더위 먹으면 병원비가 더 들어.’
‘지금 아니면 다시 올 수 없는 곳이야.’
머릿 속은 천사와 악마가 다투고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 한 바퀴 돌아보자.”
버틸 수 있을 만큼만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솔직히 크게 기억나는 게 없었다. 열심히 보려고 했으나 습기가 안경을 뿌옇게 가렸다. 유물의 설명을 읽으려 했으나 미천한 영어 실력으로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꾸역꾸역 관람을 했다. 박물관 관리자가 짠하게 나를 쳐다본다.
어라? 3층에 올라가니 멀리서 우리말이 들린다.
'이제 더위를 먹어 환청까지 들리나?'
귀를 기울여 본다.
“진짜 우리말이네. 시리아에서 우리말이 왠일이지?”
시리아는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기에 한국사람을 보는건 극히 드물다. 우리말이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말의 근원지는 유적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곳이었다. 단발머리의 앳된 여성이 보였다. 하얀색 반소매 셔츠에 검은색 바지지를 입은 모습이 수수해 보였다. 동양인이었다. 그녀는 우리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달랐다. 처음 들어보는 낱말도 있었고 억양도 달랐다. 북쪽의 말이었다.
“맞아, 이 나라는 북한과 친하지.”
북한과의 수교를 맺었지만 우리와는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 우리나라의 구애에도 북한과의 친분을 중시하는 나라. 내가 시리아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처음 보았다. 북한 사람. 유년 시절 반공교육을 받았던 나로서는 위화감이 먼저 들었다. 조기교육의 병폐이다. 하나 그녀도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다. 외국 사람이 그녀와 저를 보면 'Are you Korean?'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는 문화재를 살펴보며 자기 할 일을 하였다. 시리아에 유학을 왔거나 연구자로 온 듯 했다. 연구하러 온 것 같습니다. 나도 의식하지 않은 척 전시물을 관람했지만 마음은 계속 요동쳤다. 먼 타지에서 만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떻게 이곳에 계시나요?'
'남한 사람은 혹시 제가 처음일까요?'
'당신의 나라는 어떠한 곳인가요?'
그녀와 거리를 좁혀 볼 요량으로 주위에 서성거렸다. 관람하는 척하며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녀는 이러는 내가 신경 쓰이지 않나 보다. 자신의 역할만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렇게 1~2m 거리를 두고 한참을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고민을 해봤지만 더 이상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한 사람과 접촉했단 이유로 강제 송환 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민만 하다가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당신과 만나 진심으로 반가웠다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그 대신, 잘 웃지 못하는 내가 최선을 다해 웃어본다고…
그리고...
통일이 되면 꼭 만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