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는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시사철 서핑, 호핑투어를 즐기는 이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곳을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데 코타키나발루는 동남아시아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Mt. Kinabalu)을 품고 있다. 약 4,100m의 높이인 산은 낮은 지대에서부터 높은 지대까지의 다양한 기후와 수천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어서 마치 외계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코타키나발루에 왔으니, 키나발루산도 가봐야 하지 않겠어?"
당일치기로 키나발루산을 찾아 갔다.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큰 다짐을 하고 간 것이다. ‘등산은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곤 했지만, 실은 운동부족 때문이다.
“등산은 말고, 산 근처를 돌아보자고!”
키나발루산에도 산책로가 있어서 간단한 산책을 하고 온천욕을 즐길 요량이었다. 입구 안내소에는 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등산객들이 많았다. 등산객들에게는 유명한 산이 었다. '동남아시아 최고봉'이라고 하니 그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임이 틀림없다. '나 등산 좀 하는 사람이야!'라며 으쓱대듯이 등산화를 고쳐 신고 옷매무시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다들 전문 상악인들 같아 기죽들었다. 한 무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등산간다고 하면 장비부터 풀세트다. 화려한 메이커 등산복과 고어텍스 등산화, 등산지팡이 등 고가의 등산용품이 주를 이루는데, 그들은 평소에 신던 운동화, 낡은 반바지, 상의를 탈의한 차림이었다. 누가 보면 동네 청년인 줄 알았을 것이다.
푸른 눈과 금발 머릿결을 한 청년들은 영국, 독일에서 온 청년들이었다.앳된 얼굴로 추측컨대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친구들끼리 여행 중이었고 오늘은 키나발루산을 오른다고 하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거리며 친구의 어깨를 치고 머리를 부닥친다. 혈기 왕성하고 자유로운 청춘이다. 작은 것 하나도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건 소중한 벗과 함께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들과 서로가 지나온 길에 대한 이야기, 여행 정보를 공유하였다.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헤어졌습니다.
그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왔는지가 궁금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코타키나발루로 왔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전 우정 여행일까? 아니면 휴가 받아 함께 보내는 걸까? 혼자만의 상상하며 높디높은 나무들 사이로 놓인 길을 걸었다. 젊음, 패기, 열정이 부러웠다. 새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그들의 삶에 시샘을 느꼈다.
우리는 일주일 정도 휴가 내는 것도 힘든데, 그들은 한 달가량 휴가를 낼 수 있다. 한달을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사용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우리네 직장인들의 휴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길어야 일주일이다. 휴가 쓰는 것도 얼마나 눈치를 보는가? 유럽은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휴가를 낼 수 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거긴 우리 보다 잘살잖아.',
'선진국이라 여유가 많겠지.‘,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그렇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터에 얽매여 살다 일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휴가는 사치라는 문화 때문이다.
휴가를 많이 주는 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여태까지 일구어 놓은 돈, 명예, 지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지 않을까?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산길을 내려오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인생의 변곡점을 찍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온전히 자기 삶에 집중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내 삶을 가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인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어.‘
창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