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상황이나 기분을 가장 쉽게, 한방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음악이다. 내겐 그렇다. 그날이 그날 같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루에도 음악을 트는 순간, 음표 하나하나, 노랫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순간순간이 특별해진다. 뿐만 아니다. 내 공간 네 공간의 존중 따위는 사라지는 만원 지하철 속에 서 있을 때는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모든 게 나름 견딜 수 있어진다. 귓속의 황홀함 때문에 다른 불편한 감각들에는 좀 무뎌진달까. 친구나 연인과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우는 낭만은 또 어떤가. 소리가 만든 비눗방울 같은 것에 우리 둘만 쌓여 다른 세상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그 기분.(요즘처럼 에어팟을 쓰는 MZ들은 잘 모르겠지만 줄 이어폰을 그렇게 나눠 꽂으면 둘이 꼭 붙어서 샴쌍둥이처럼 머리를 맞대고 걸어야 한다오.) 그래서 나는 늘 음악을 듣는 편이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 가요, 팝, 힙합, 재즈. 문제는 너무 과도하게 듣는다는 것. 워낙에 귓속을 음악으로 꽉 채우는 걸 좋아하는데 길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들으면 거리의 소음 때문에 볼륨을 점점 더 높이게 된다. 옆에서 같이 걷던 딸이 “엄마, 음악 너무 크게 듣는 것 같아. 쾅쾅 울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했지만, 그게 그렇게 포기가 안 됐다. 그때 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귀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명처럼 사람들 말소리가 울려서 들리고, 귀에 물이 찼을 때처럼 먹먹한 느낌이 들거나 소리가 한 겹씩 쌓여 들리는 듯 소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 증상이 시작됐다. 증상은 심해졌다 나아졌다 했는데 그 패턴을 분석해 본 결과, 심해지는 때는 첼로 연습을 하고 난 뒤였다. 증상이 나온 다음부터 오른쪽 귀에 이어폰은 아예 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증상 유발의 주범은 첼로였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연습해야 할 때는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을 하는데, 그런 날이면 일단 연습실 비용으로 들어간 본전 생각에 더 열심히 하기도 하고, 평소 위아래 집 무서워 주눅 들어 살살 긋던 현을 마치 분풀이하듯 그어댄다. 방음이 되는 좁은 연습실은 울림 또한 굉장하다. 결국 그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평상시에도 불편감이 심해지면서 옆 사람의 말소리에도 귀가 왕왕 울려댔다. 상대방이 얘기를 할 때면 지긋이 귀를 눌러 소리를 차단해야 하는 지경(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이 말하는데 슬쩍 귀를 막고 있는 나를 보며 황당해하던 얼굴들이 몇몇 스쳐 지나간다)까지 가고 나서야 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명이나 난청을 전문으로 보는 병원이었는데, 진단명은 저주파성 난청? 돌발성 난청의 사촌동생뻘 되는 증상으로 특정한 저주파에만 귀가 울리는 증상이라고 했다. 결국 저음이 특히 문제라는 것인데, 첼로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다행히 선생님께선 첼로를 쉬라거나, 중단하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대신 음악가용 귀마개가 있으니 첼로를 할 땐 그걸 사용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참으로 없는 게 없는 세상일세. 증상이 시작된 후부터는 시판 중인 3M 귀마개를 꽂고 첼로 연습을 했는데, 그런 음악가용 귀마개는 소리 자체의 볼륨을 줄이는 것이지 않고 귀에 불편감을 주는 특정 주파수의 음만을 차단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값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저렴한 것은 만원에서부터 10만 원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했다. 첼로를 중단할 필요도 없고, 고막이나 청각 세포의 손상도 눈에 띄지 않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소음방지 귀마개를 배송받고 막상 귀에 꽂아보니 은근 눈에 띄었다. 사람 심보라는 게... 병원에 가기 전에는 귀만 괜찮다면, 그래서 음악을 계속 듣고 첼로를 계속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다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큰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오니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이 쓰였다. 가뜩이나 전방위적 노화가 시작되어 남 일인 줄 알았던 새치 염색, 팔자 주름, 그리고 이제 밖에도 휴대하게 된 돋보기를 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제는 보청기(처럼 보이는 사실상 귀마개)까지 끼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게 잘 들리게 하는 보청기가 아니라 저주파성 소리를 막아주는 귀마개거든요.’라고 설명할 순 없는 노릇.
일단은 언젠가는 완전히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 믿으며 몇 가지 생활 습관을 바꿔보기로 했다. 1번, 이어폰과 이별. 중학교 1학년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귀에 꽂고 살았으니 나의 기쁨을 위해 내 귀가 30여 년 넘게 혹사당했음을 인정하고 이어폰으로부터 은퇴를 시켜주기로 했다. 2번, 울림이 크고 첼로도 더 세게 긋게 되는 연습실 포기. 그리고 나는 요즘 3M 귀마개를 휴대하고 다니며 큰 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귀에 꽂는다. 그렇다. 사십 대 후반부터 보청기를 낀 여자가 되기보단 차라리 일반 생활 소음도 참을 수 없어 형광 노란색 귀마개를 꽂는 까칠한 인간이 되는 쪽을 선택한 것. 생각해 보면 이런 귀마개는 요즘 핫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원조 아니겠는가. 충전도 필요 없고 가격도 저렴하고...
어찌 됐든 목 디스크를 이겨내고, 저주파성 난청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도 나는 첼로를 연습한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오려나.
'다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