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미국 전문대 교수가 되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을 위해서 출국을 할 때 나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짐을 바리바리 싸서 이사를 했다. 당시 학생이 던 나에게 거금 60만 원을 들여서 책과 옷가지를 우편으로 미국에 먼저 보내고 조교를 일을 하던 기숙사 사무실에서의 일은 출국을 한 달 앞두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한 달의 쉼과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미국에 남게 될지, 어떤 삶을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을지. 그리고 어디에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하게 될지.
지난 5월, 나는 6년 차 2학기의 티칭을 마무리하고 긴장이 풀린 탓에 몸살을 앓고 있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는 자신이 우리 동네의 유일한 2년제 전문대학교 영문과와 철학과의 학과장이며 연초에 낸 지원서에 대해 인터뷰를 제안해 왔다. 아직 관심이 있는지 여부와 그 주에 인터뷰가 가능한지 물어왔다. 이사 중이었던 나는 스케줄러가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겠어서,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에 그녀는 인터뷰는 1시간 정도가 될 예정이며,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과 모의 강의를 요구했다. 그렇게 구술 면접이 끝나면 나는 이메일로 샘플 학생 과제를 받아 보게 될 것이며 실제로 학생에게 피드백을 주고 채점을 해서 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뜬 마음에 재학 중이던 학교의 취업 도움을 주는 교수님께 연락을 해서 인터뷰 도움을 받았다. 2년제 대학은 4년제 대학에서의 임용과정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임용되는 교수들에 대한 기대도 많이 다르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도움을 요청했다.
줌으로 만난 교수님은 친절하고 감사히 본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4년제 대학에서 기대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기대할 수 없다고. 그래서 가르치는 경험이 많이 힘들 거라고, 그리고 티칭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논문을 마무리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신간 관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임용이 되면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논문을 다 쓰고 졸업을 앞둔 박사 6년 차가 아니라 아직 논문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박사 6년 차이다. 그런데 학과에서는 펀딩이 6년 차까지밖에 안되고 다음 기수부터는 6년 차 펀딩조차도 없다고 선언한 마당에 나는 내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나에게 너무나 절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반년에서 1년 반을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할 판이었다. 새로 집을 사서 매달 모기지를 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 이상적이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너무 간절함이 드러나지 않게 쿨한 태도로 면접에 임하기로 했다. 티칭 로드가 5-5이면 일주일에 강의만 15시간, 티칭준비와 채점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50시간은 족히 넘고 그렇게 되면 논문을 쓸 시간은 저녁에 혹은 주말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도 체력적으로 몸이 따라준다면… 그러니 이 대학에 임용이 안되면 빨리 논문이나 쓰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면접에 들어갔다.
화상 통화 앱으로 면접관을 접한 첫 10초간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3-4명의 면접관이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8명의 면접관이 빼곡히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와 통화를 한 학과장과 2-3명의 영문과 교수들, 그리고 인사과, 인문대학장 등의 면접관이 무표정으로 각자의 네모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모두가 자기소개를 한 후 면접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질문들과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 베이스 질문에 모두 답한 후 이틀간 열심히 준비한 티칭데모를 했다. 교수님들과 중년의 행정 선생님들을 모시고 학생들을 가르치듯 모의 강의를 하는 것은 생각한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헛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 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가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내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잘 못 이해되어 좋지 않게 보이진 않을지 걱정을 하면서도 내 영어가 너무 외국인스럽진 않은지, 내가 하는 말이 제대로 된 문장으로 구성이 되어있는지, 제대로 된 단어 선택을 하면서 말을 하고 있는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1시간의 시간이 금세 지나고 나에게 아무런 반응을 해주지 않은 방청객에게 최대한 밝게, 그러나 어색하게, 다시 인사를 나누고 화상통화 앱을 껐다.
목뒷덜미, 겨드랑이에 땀을 닦고 편한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시원한 물을 마셨다. 이제 내손을 떠난 일이었다. 이제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다시 논문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학과장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면접관이 모두 나를 마음에 들어 하여 그 자리를 나에게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진짜 그랬나요?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20분의 생각할 시간을 갖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1달간의 긴 행정심사 끝에 어제 나는 캠퍼스 인사과를 방문하여 모든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임용과정을 끝마쳤다.
나에게 홈베이스가 생긴 느낌이었다.
이제 논문이 잘 안 풀려도 기댈 수 있는 직장이 생겼고, 졸업을 하고 임용 전까지 티칭 공백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일도 없어진 것이었다.
영주권이 나와서 학생비자가 만료되어도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을 때 보다도 삶의 안정이 찾아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직 박사학위를 마치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들어섰기에 내가 아직 못 끝낸 것, 내가 아직 못 해낸 것들에 대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오늘은 남편과 타운의 몇 안 되는 맛집에 초밥을 먹으러 가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이 시작을 celebrate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