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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iter Aug 17. 2023

8. 선생님의 마음이 생기기까지 pt 2

티칭 시니시즘에 대하여

2020년 봄은 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삶의 큰 변화가 생긴 계절로 평생 기억 할 것이다.



나는 그때 보스턴에 학회가 있어서 지금의 남편과 함께 보스턴에 들렀다가 바로 봄방학을 맞아 시부모님이 계신 애틀란타에 놀러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이미 같이 살고 있기도 했고 겨울방학에 같이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온 터였다. 여름에 한국에서 식을 올릴 계획이었으나 2월부터 거세지던 코로나 소식에 일단 법원에서 혼인신고라도 먼저 하고 내가 박사학위를 위해서 공부 중이던 텍사스에서 부부로서의 삶을 함께 시작할 계획이었다. 


봄방학이 끝나갈 무렵 텍사스로 복귀를 했고, 당장 월요일부터 수업이 있어서 강의 준비를 하던 중 학교에서 3월 16-20일 수업을 캔슬한다는 이메일을 받왔다. 수업만 휴강할 뿐 나머지 학교는 정상 operate 한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강사로 일하던 나는 월요일에 바로 학교에 나가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줌 사용법 교육을 받았다. 급하게 대면으로 진행이 되던 수업들이 순식간에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고 3월 23일에는 Shelter in place order까지 내려지면서 봄방학을 끝으로 외출이 제한되었다. 



학생들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용케 다들 줌을 쓰는 법을 익혀서 수업에 참여했다. 마지막 한 달 반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학생들이 크게 impact 받지 않고 무사히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모색하는 분위기였다. 가장 흔한 방식은 학생들이 전 세계적인 팬데믹에 받았을 충격을 감안해 그레이딩을 느슨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계속 바뀌는 방침과 지침들, 그러나 선생님인 동시에 나도 논문 프로포절을 준비하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고 자료 접근이 제한되면서 이래저래 난감하던 참이었다. 학생들의 과제를 보통 때보다는 좀 편하게 그레이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행히도 학생들은 이미 과제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큰 무리 없이 과제를 잘 마무리했고, 나도 그레이딩을 마무리하고 논문 프로포절 발표를 할 수 있었다. 


2020년 봄학기 팽배하던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자’는 분위기는 그 이후 1년간 학교의 권유로 통하게 되었고 2022년에는 “옳은" 교수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느샌가부터 동료 대학원생 강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학생들과 티칭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던 선배마저도 학생들의 너무나도 다양해져 가는 사정인지 알 수 없는 핑계들과 도를 넘어서 정신건강에 대한 과제 조정에 대한 요청들에 냉소적이어져만 가는 것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끔은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이 진자 아픈 것 같기도 한데 그에 대한 병원의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는 걸로 미뤄 짐작해 보면 팬데믹 중에 나온 새로운 핑곗거리가 되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온 지금은 마음의 병을 너무도 쉽게 얘기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 일 수 있다. 모든 사사로운 마음의 병을 가지고 병원을 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증빙 서류가 없을 수도 있으나, 정말 아프다면, 계속 수업을 나오지도 못하고 과제도 못할 지경이라면 병원을 찾는 것이 맞다. 이것 또한 강요하기가 어려워진 게, 한 번은 학생이 자꾸 아파서 수업에 못 나왔다고 해서 그럼 학교 클리닉에라도 가라고 했는데 보험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반성한 적이 있다. 이공계로는 전세게 10위권에 드는 학교라 학비도 비싸고 워낙 돈이 있는 집안 학생들이 많아서 돈걱정이 없는 학생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병원비가 없어서, 보험이 없어서 병원비 부담을 못해서 못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보다 학생을 위하던 마음이 남달랐던 선배는 모질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학기는 그럼 학교를 다니면 안 되는 학기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 휴학을 하고 몸을 챙기듯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휴학을 하고 정신건강을 챙기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과 건강을 챙기면서 공부해야 한다는 동의는 하지만 또 우리의 privilege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한 상황이어서 혹시나 그럴 일이 생기면 미안하지만 남편에게 의지하는 방법이 있었다. 선배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고 알고 있다. 정신건강의 문제를 갖고 있는 학생은 우리와 같이 기댈 곳이 있을까?


에스메 웨이준 왕 Esme Weijun Wang의 글이 생각났다. 에스메 왕은 조울증과 조현병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가끔은 조현병 증상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학교에서 퇴학의 위기를 맞았는데 학교에서는 왕이 자퇴를 할 것을 권유했다. 자퇴는 사유가 기록에 남지 않지만 퇴학조치를 하게 되면 평생 기록에 남아서 이후에 삶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쳐지지 않을 정신병을 가지고 사는 왕에게 예일은 학생으로서 공부할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빼앗은 학교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정신질환을 갖은 학생들을 학교는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사회에 던지게 된다. 에스메 왕의 글을 읽으면서 정신 건강에 만성적인 이상을 갖고 사는 학생들이 내 수업에서 어떻게 차별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 답은 없다. 해답을 찾기까지는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한 benefit of the doubt의 마인드를 가지고 1명의 선생님으로서 그 수업에서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으로 대처를 할 것이다.


다가오는 가을이 기대된다. 정규 강사로 한 학기에 수업을 5개 하면서 티칭 경력을 키운다는 것은 물론 이력서를 빵빵하게 해 줄 좋은 기회이지만 동시에 내가 학생들의 다양한 사정에 내 교수법을 어떻게 맞춰가는지, 그리고 티칭에 대한 내 신념이 어떻게 성정 하는지 볼 수 있는 둘도 없을 기회다. 논문을 쓰면서 바쁘겠지만,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대하면서 티칭 시니시즘을 딛고 넘어설 수 있는 진정한 선생님의 마음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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