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용. 이전까지 갑진년을 색깔 입은 용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상상하니 근사하다. 푸른 용이라니! 상상하는 것 만으로 청룡의 등 허리에 앉아 하늘 향해 비상하는 기분이다.
청룡의 해, 갑진년, 2024, '기어이' 환갑 해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런 표현을 내뱉는 걸 보니, 어지간히 맞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 이번에도 네가 이겼다!
이번에도 세월, 그대가 이겼다!
시간, 네가 이겼다!
그대의 승리를 위해 짠!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평등의 근원이 여기에 있으니 젊고 오래 살고 픈 인간의 욕망이여, 부끄러워할 줄 알라. 특히 너(나!)!!(ㅋ)
깨달음이 월계관 쓸 일이 아니라는 걸 안 뒤, 마음을 현실에 두려 애쓴다. 깨달음만 줄곧 추구하느라 무시하고 놓쳐버린 삶의 세세한 무늬와 술수에 능한 마음의 밀고 당김에 집중하려 애쓴다.
그제는, 일요일 루틴(대청소, 빨래 삶아 널기 등등)을 해내느라 몸이 몹시도 힘들었다. 지친 탓에 빨래 걸린 옷걸이를 놓쳤고, 놓친 옷은 쇠 장식품 위로 떨어져 넘어뜨리고, 떨어진 장식은 다른 액자를 넘어뜨리고⋯⋯ 도미노처럼 또 다른 노동이 요구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이때다!' 싶게 치고 올라오는 짜증. 육체의 고통을 핑계 삼아 짜증이라는 감정이 마음의 다른 감정들을 집어삼키는 순간이다.
이 감정은 너무나 강력해서 자주 진다. 생각해 보면, 경우의 수는 일상 속에 많았다. 지뢰밭처럼 널려있다. 갑자기 당하는 모욕, 갑자기 당하는 소소한 재난⋯⋯ 짜증을 내는 순간이 너무나 사소해서 부끄럽다.
짜증 감정에 점령당하고 나면, 그동안 애써 공부했던 마음공부가 와르르, 무너진 듯한 참혹함에 빠진다. 공부 진전 있다고 우쭐댄 스스로의 마음이 '거짓'이었나, '착각'이었나 하는 의심에 자존감은 바닥을 긴다.
인품에 등급을 매긴다면, 그 잣대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
공자의 잣대도 있고, 부처의 잣대도 있고, 예수의 잣대도 있고, 각 문화의 도덕 잣대도 있을 것이나 내겐 감정, '짜증'이었던 듯싶다.
오랫동안 이 '짜증'의 감정을 분석하며 극복하려 애썼다.
'타고난 사주팔자에 화가 많아 성급해서?'
공부해 보니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 또한 일면 타당하다.
'목적으로 생긴 욕심 때문에?'
이도 맞는 이야기다.
살면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대학 동아리 후배였는데, 그를 보면서 느낀 건 고되고 치열한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성품이 그러하다, 였다.
짜증 같은 건 한 번도 낼 것 같지 않은 너그러움, 화 같은 건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한결같은 평온함. 그는 닮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영향력을 아우라(아오라)처럼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경우 불가에서는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았다'라고 말한다.
이러면, 면피를 위한 핑계가 생긴다. 나는 '짜증 지수가 좀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되니까. 전생에 수행을 덜해 이런 성품으로 태어났고, 이제 수행으로 바꿔나가면 되니까.
그러나 이제, 전생 같은 건 핑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걸 안다. 깊은 명상을 할 때면, 세상 모든 게 연결되었다는 거시적 진실 측면에서만 윤회의 의미가 상통한다는 걸 느낀다. 독립된 한 생명으로서의 윤회는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겠다.(호모사피엔스가 존재한 이래 만들어낸 많은 종교들 입장에선 그만큼 많은 찬반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러니 짜증 떨쳐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내 안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이 세상을 인식하는 건 하나뿐인 육체와 마음을 가진 '나'이니까. 그러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두 번째 맞는 청룡의 해, 나의 목표는 여전히 '두 번째'라는 60년 시간 구분이 무색하게 계속 이어진다.
언제 '짜증'에서 자유로워지지?
혹 죽으면서도?
오싹하다. ㅋ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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