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2015년 2차 허리디스크 침공 이래, 누워 생활하던 내게 빅뱅이 일어났다. 6평 원룸의 세계가 팽창하여 나의 우주가 5km 반경까지 커졌다. 매일 수영장에서 걷는 재활을 하고 재활센터에서 운동을 하여도 눈에 띄게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아픈 거 참으면서 직장을 한번 다녀보기로 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로 가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최대 3시간만 활동했던 내가 내린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다. 밥솥에 291시간 말라붙은 밥처럼 살 수만은 없었다. 재활을 언제까지 쉬면서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실패할 수도 있는 무모한 도전을 택했다. '하루는 버틸 수 있을까? 한 달은 가능할까?' 두려움 속에서 ‘1년을 버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라는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 “회사에서는 눕지 마”
회사를 출근한 후에 제일 먼저 했던 것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누워서 쉬는 것은 최고의 진통제였다. '누울 공간이 있냐'와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냐'는 동일한 문장이었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건물 안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회사에는 침대 2개가 마련된 휴게실이 있었다. 살았다, 싶었다. 처음에는 회사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팀원과 점심을 먹은 후에 그곳에 가 누웠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통증이 누적되어 허리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고 점심시간만 되면 나는 팀원과의 점심을 포기한 채 좀비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안이 급박하여 오후에 출장 다녀와서 5시에 1차 보고를 하고 저녁도 안 먹고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의자에 앉아 허리를 혹사시키며 검토보고서를 수정했다. 총 9시간 동안 쉬지도 못한 채로 일을 하다 보니 미세한 움직임에도 허리가 잘못될 것만 같아서 빨리 끝내고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그 다음 날에도 7시에 출근하였다. 서류를 확인하며 보고를 준비 중인 팀장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고, 팀장님이 최종 결재권자 사무실로 나가실 때야 비로소 '이제 쉴 수 있겠구나' 싶어 바로 휴게실로 내려갔다. 어제 무리한 탓에 최악의 허리 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허리는 이미 비상상황이었다. 시곗바늘은 야속하게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하루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허리 배터리가 10% 밖에 안 남은 것 같았다. 잠깐 누워서 충전하고 8시 45분쯤 올라왔는데 팀 분위기가 싸늘하다. 팀장님이 부르신다.
팀장님 : “회사에 소문 다 났다. 너 맨날 누워있는다면서.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한테 안 좋게 보일지 생각은 안 해봤니”
나 : “...”
팀장님 : “오늘 같은 날은 그래도 자리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급하게 너를 찾을 수도 있는 건데, 자리에 없으면 어떡하냐.”
나 : “....”
팀장님 : “너 그렇게 누워있는 거 소문나면 너한테도 안 좋아. 누가 너를 쓰겠어. 내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가 맨날 누워있는 게 말이 되니? 너 허리 아픈 건 아는데 회사에서는 눕지 마. 자고 왔는데 왜 아침에 또 누워있는 거야.”
나 : “...” (저도 눕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안 누우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누워있는 거예요.)
팀장님 : “일찍 왔다가 가방만 놓고 내려가지 말고, 아예 40분에 와. 눈치껏 좀 해라. 눈치껏.”
나 : “....”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자리에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허리를 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눕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잠깐 꾸중을 듣는 것보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그 선택으로 아침에 눕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됐다. 그동안 허리가 아파서 점심도 안 먹고 휴게실에 갔었고, 그런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을 좋아할 회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9시 이전과 점심시간은 근무 시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자유시간이고, 이 시간에, 나를 위해서도 있지만, 결국에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점심에 밥도 포기하고 누워있었던 건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허리가 아파서 어쩔 수 없는데 왜 나쁘게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는 되었지만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
회사에 다니려고 결정했을 때 무수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회사는 일을 하러 온 곳이기 때문에 내가 아픈 것을 싫어할 거야, 그러니까 나는 아프다고 해서는 안돼, 정말 못 참겠을 때 이야기를 해보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거야. 그러니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도 상처를 받지 말자.’
이해받지 못하는게 기본값이라고 마음 속으로 반복하고 반복해서 상처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상상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무너졌다. 회사에는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막을 길은 없었다.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아진 거야’라고 위안하면서, ‘1년만 어떻게든 버티자. 나에게도 희망이 있을 거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 평범한 하루
평범하다는 것이 내 현생에서 가능한 걸까.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동료와 커피를 마시고, 다시 일하고, 퇴근하고, 혼자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일. 이 정도가 내가 원하는 평범한 일상인데, 이것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먼 길이었다. 그저 회사의, 회사를 위한, 회사에 의한 생활만이 쳇바퀴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나 혼자 겨우겨우 해냈지만 회사에 다니는 것은 (날숨, 휴!) 내 힘 밖의 일이었다. 일단 회사에 가는 길 자체가 고역이었다. 준비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렸고 버스를 타면 도로가 울퉁불퉁해 버스가 위아래로 쿵쿵 댔다. 카레이서 슈마허 버스 기사님 X 급정거 X 급커브 컬래버레이션 충격은 내 허리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아침에 조금 누워있다가 오전에 일을 해도 허리 배터리는 이미 60%가 사라졌고 10시부터 허리 통증 참을성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40%, 남은 5시간 동안 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남들이 점심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할 시간에 나는 허리 배터리 보충을 위해 휴게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5분 전에 일어나 삶은 달걀로 점심을 때우거나 급식실에 가 살기 위해 연료를 욱여넣었다. 그러면 겨우 10% 저속 충전되어 50%가 됐다. 오후 근무를 하고 나면 항상 방전 직전 경고 메시지가 떴다. 퇴근하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쓸 허리 배터리에 여유도 없고 일도 남았다. 다시 충전을 해야할 시간이다. 석식 시간에 다시 내려가 눕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일의 매뉴얼을 읽으며 공부한다. 야근을 해야 하는데 그럴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에 서류를 챙겨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사무실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카카오 버스앱을 켜서 정류장에 버스 도착하는 시간을 계산한다. 1분이라도 나가는 시간을 미룬다. 퇴근할 때는 방전이 언제될지 모르기 때무에 1분 1초가 소중하다. 절전 모드 상태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허리 상태에 따라 내 페이스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옷만 후다닥 갈아입고 찜질기가 세팅되어있는 침대에 다시 눕는다. 샤워를 하고 싶지만 더 누워있기로 한다. 2시간 급속충전 후 밥 먹고 씻고 다시 누워서 챙겨 온 서류를 들춰본다. 회사에서 누워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으니 집에서 누워서 야근을 한다. 생각은 사치다. '생각아, 생각나지 마라. 1년만 버텨보자.' 이건 아주 운 좋은 정시퇴근의 하루다. 일주일에 무조건 두 번은 야근을 해야 했다. 혼자 일을 터득하느라 쉬운 일도 어려웠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고속충전이 안되는 몸을 가진 나는 시도때도 없이 허리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외 모든 것은 허리 다음 문제였다.
#. 나 혼자 버티는 게 다가 아니었다
SNS.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 사회는 관계망이다.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안에는 많은 관계들이 존재한다. 나는 허리 아픈 거 이외에 다른 것을 고려할 수 없는 몸이니 인간관계는 마음을 비우고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대신 일만은 잘 해내자고 다짐했다. 일만 잘하면 회사 다니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나는 허리와 일, 이 두 가지만 회사생활의 중요 변수로 봤다.
관계를 포기했기에 회사에서 외톨이라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나도 좋은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싶기도 했고, 퇴근 후에 한잔을 하고 싶기도 했고, 동기와 만나 놀고도 싶었다. 하지만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는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을 하고 있는 이상, 허리를 위해 충전해야 하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점심시간은 남은 오후 근무를 위해 '무조건 허리 안정'을 위한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퇴근 이후에는 내일을 버티기 위해 쉬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친한 사람들이 따로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과 사람들끼리 저녁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고 단념했다. 그래도 3시간만 활동하던 내가 8시간 동안 일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잘 버티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근무를 하고 1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든 생각은 ‘내 허리만 생각하면서 회사생활을 할 수 없구나.’였다. 허리를 위해서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였고, 이런 행동들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오해가 쌓여가고 있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의자에 앉아 있지 않는 나를 보며 산만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단다. 동료에게 물어볼 때도 앉아서 물어보지 않고 서서 물어보는 게 부담스럽고, 집에서 스탠딩 책상을 가져와서 쓰는 게 너무 튄다는 이야기 등등. 허리가 아파서 앉는 것보다 서있으려고 했던 행동들이 다른 식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사치였다. 휴게실에서 쉬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지 못하므로 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상태를 자세히 말하기는 어려웠다. 퇴근 이후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더 힘들었다. 회사에서 나라는 사람은 "쟤, 허리가 안 좋아"라는 한 줄로 설명됐지만, 그 한 줄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알 길이 없었다. 이 세상 누구나 허리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허리디스크 통증이 생(生)을 뒤바꿔버릴 만큼의 변수라고 생각해보지 않는다. 통증 강도가 다르고, 그 강도는 겪어 보기 전까지는 인식되지 않으므로.
#. 다시, 원점. 아니,
내 손에 회사라는 쌍쌍바 아이스크림이 있다. 한쪽은 허리고 한쪽은 일이다. 두 개의 바를 잡고서 힘을 잘 조절하면 깔끔하게 쌍쌍바 아이스크림을 떼어낼 수 있듯이 일을 잘하고 허리만 잘 지키면 회사 생활을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사회초년생의 순진한 유토피아였다. 허리가 아파 포기해버린 '관계'가 ‘일’에 영향을 미치는 횟수가 잦았다. 일이 관계 그 자체였다. 회사생활은 쌍쌍바가 아니라 저글링이었다.
일적으로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비상근무와 당직근무였다. 업무 외에도 아프리카 돼지열병, AI 등의 감염병 근무와 자연재해 관련 근무(봄에는 산불근무, 여름에는 폭염경보와 호우주의보, 겨울에는 한파주의보와 대설주의보)를 해야 했다. 특히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심해질 시기에 3일마다 12시간 동안 돼지농가 앞에서 밤샘근무를 했던 게 허리에 치명상을 입혔다. 어느 날 의자에 10분도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팔로 버텼다. 하필 팀원이 장기 연수를 가서 팀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그 주 토요일이 돼서야 수술했던 병원에 가 MRI를 찍었다. 예전에 안좋았던 4-5번 허리디스크뿐만 아니라 5-1번이 악화되어 염증이 흘러내려서 통증이 더 심해지게 됐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이틀마다 5만 원짜리 주사를 맞았다. 이대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매일 회사에 8시쯤 가서, 울면서 휴게실에서 누워있다가, 8시 45분에 사무실에 가서 웃었다. 아파도 그 아픔으로, 그 부정적 에너지로, 주변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배려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음을 집안에서 혼자 쓰러질 때까지 알지 못했다. 끝까지 나를 몰아세운 후에야, 내가 0이 된 후에야, 안 아픈 척 비환자 코스프레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녹다운. 탭을 쳤다. 땡땡땡. 경기 중단.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요양하러 집으로 떠납니다.'하고 바로 끝내고 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근무 부서와 인사팀과 지난한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어서 '계속 버텨야 되나' 생각이 마지막까지도 맴돌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결정해야 했다. 허리를 위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 재경기가 불가할 것이었다. '(주의 요함) 허리디스크 환자의 8시간 풀타임 근무'라는 무모한 도전은 실패였다. 괜찮다. 다시 원점이다. 아니, 다시 시작이다. 1보 후퇴다, 3보 진격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