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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07. 2024

너와 나의 좌충우돌 여행기

겨울방학 끝자락에 아들과 데이트

엄마, 그럴 수도 있죠. 이것도 다 추억이에요.


시작은 부끄러울까 봐였다. 현금을 받지 않는 버스가 수도권에서는 운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 올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불현듯 기차가 종착역에 가까워지자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 며칠째 내리다 말다 하는 비로 잔뜩 흐려있던 하늘이 아들과 여행 첫날인 이날 아침은 오랜만에 해가 말간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치 기차 안의 투명창을 뚫고 부서져 들어온 햇빛 알갱이들과 설렘으로 충만한 아들의 마음이 만나 더없이 따사롭고 밝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게 말이다.


오직 버스요금을 어떻게 계산할지만 생각했다. 혹시 남편이라면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전화했다 가족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교통카드 기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걱정은 급작스럽게 눈두덩이 굴린 듯 커졌다. 대신 교통카드 앱을 다운  받아 사용해 보라는 말로 약간의 위안을 줬다. 전화를 끊고 바로 앱을 다운 받아 금액도 충전했다. 그러나 쉽사리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운받은 어플의 카드는 흔한 바코드나 QR코드도 없었다. 왠지 그래서 더 미심쩍었고 불안한 마음은 커질 대로 커졌을 때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허둥대는 내 모습에 아들의 불안 스위치도 함께 켜졌다.


얼마 전부터 인별에 자주 올라오는 경기도의 별**도서관에 가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건성으로 알겠노라 대답한 것이 화근이 됐다. 게으르고 딱히 계획적이지 않은 엄마는 끝내 아들의 눈물을 보고서야 부랴부랴 여행길에 올랐으니 애초에 준비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대충 최종 목적지로 정해진 곳에서 주변 관광을 하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랬던 첫날부터 교통카드 생각에 여행에 대한 기쁨은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안만 더해져 무거운 마음이 됐다.


일단 조급한 내 마음과 불안한 아들을 동시에 진정시키기 위해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함께 먹을 메뉴를 정했고 좋아하는 음식이 먹으니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밝아진 아들 모습에 나도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도 교통카드 생각뿐이었다.


어영부영 여행 첫끼를 해결하고 계산대에 섰다 ***페이가 갑자기 생각나 서둘러 어플을 열어보니 교통카드 기능이 있었다. 결제 수단으로는 자주 사용하면서도 교통카드는 쓸 일이 없던지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유레카라도 외치야 할 판이었다.


곧바로 교통카드를 다운 받기 시도했으나 계속 경고 메시지만 떴다. 문제는 조금 전 다운 받은 교통카드가 문제였다. 중복 결제가 될 수 있으니 완전히 어플을 삭제해야 한다는 경고 내용이었다. 조금 전 다운 받은 교통카드 어플에서 충전한 금액을 환급 신청하고 삭제를 눌렀더니 또 다른 경고 메시지가 떴다. 환급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플을 삭제하면 환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첩첩산중이었.


그렇게 어플 다운 받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과정에서 나는 점점 지쳤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의 불안과 불신도 다시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자고 온 여행에서 시작도 전에 불편해지는 것은 싫어 빠르게 택시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다. 길에서 불안만 키우고 허비한 시간이 아까웠고 여기에 예상보다 적게 나온 택시 요금에 헛웃음이 났다. 여기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니 관광이 더 재미있는 듯했다. 꽤 많이 걸어 다녔지만 아들은 힘들다는 내색도 없었다.


이제 숙소로  편안하게 쉴 일만 남았다. 우선 길 찾기를 검색해 주변에 버스정류소와 숙소로 갈 수 있는 버스가 많다는 걸 알았다. 생각보다 택시비가 과하게 책정되어 있어 버스에 욕심이 생겨 기사님께 현금 탑승이 가능한지 묻기 했다. 그렇게 타야 할 버스 방향과 현금 결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둘러 숙소방향 버스에 올라 요금을 계산한 후 의기양양해진 나는 편안한 좌석에 앉는 순간 영혼이 잠시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경험을 했다. 환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도착지가 수*시청역에서 시청역으로 머릿속이 새롭게 세팅됐다.


아들과 자리에 앉아 이날 일정이 순조롭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곧 숙소에 들어가 씻고 편안하게 쉬며 보상받자며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어플에서 제시한 시간이 두배로 늘어나도 차가 막혀 그럴 거라 스스로 타협하며 어플을 닫았다. 한참 늦게 도착지에 도착해 어플을 다시 켰다 깜짝 놀랐다. 숙소까지의 시간이 이전보다 세배로 늘어나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는데 두 배 다시 숙소까지 세배라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수*시청역 대신 용*시청역이 앞에 있었다. 정말 망했다.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따뜻했던 날씨도 차갑게 변해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먼저 아들이 걱정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보다 침착했다. 절망하는 내 말에 그럴 수도 있다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는 나에게 꽤 많은 요금에 전철을 선택한 것도 아들이다.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그날의 전철 안에서 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계획성 없는 것도 결단하지 못해 어영부영하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드는 것도 모두 그랬다. 그래도 아들 덕분에 이런저런 일들이 모험 같고 싫지만은 안은 여행 첫날이었다. 아들의 겨울방학 끝자락에 좌충우돌 둘의 데이트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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