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막 끝낸 후아침을 차리고 청소기를 돌린 잠깐사이에도한번 더 샤워를 한 듯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서둘러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 무겁고 끈적한 공기를 쫓아보지만 쉽지 않다.
눈꺼풀을 겨우 들고 잠에서 깨 일어난아들은 에어컨과 선풍기 덕에 바뀐 아침 공기에 오스스해했다.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 나에게 필요한 서늘한 공기를 포기할 수 없다.
이날은아침에 한 번도 울린 적 없는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려 깜짝 놀랐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아 미적거리고 있으니 밖에서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앞집 주인아주머니다. 우리 집 화단에 심어져 있는 덩굴 식물 낙엽이 자신 집으로 너무 떨어진단다. 그래서 매일 쓸어야 해서 힘드니 어떻게든 해결을 부탁했다.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니 곧바로 알겠다고 답하고 서둘러집안으로 돌아와평소 아침보다 더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분주하게보냈다.
오후 퇴근한 남편에게 아침 일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굼뜬 성격이라 바로 해결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근데 웬걸!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슬쩍 밖으로 나가더니 전지가위를 찾아 덩굴식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 이런 일도 있네!
속으로 희한하다 생각하며 곧바로 실행하는 힘이 남편에게도 있었구나 싶어 좀 놀라기도 했다.
아.
단말마의 비명 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보니 잔뜩 찡그린 얼굴에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으로 잡은 남편이 보였다.
벌에 쏘였어! 말벌이야.
말벌이라는 단어에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무수히 많은 뉴스에서 본 말벌사고가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바로 병원 가요.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곧바로 병원이 떠올랐고그에 비해 남편은 조금 미적거렸다.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라는 말에 놀란 마음이 진정되나 싶더니, 얼마 전 다친 내 발목에 너무 무관심했던 남편의 태도가 떠올랐다.
당신도 서운함을 느껴봐요. 당신의 무관심한 태도 탓에 내가 얼마나 섭섭하고 상처받았는 줄 알아요!
나는 속으로 일갈하며 고통이 나누면 반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러움이 배가 되는 경험을 맛보게 해 주겠다 다짐했다. 이렇게라도 내 얄팍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팅팅 부은 입술을 내 눈앞으로 계속 들이밀며 상태를 시시각각 생중계하니 이도 싶지 않았다. 여기에 아빠가 말벌에 쏘였다는 것에 잔뜩 겁을 먹고 자신이 책에서 읽었던 <벌에 쏘였을 때 응급처치> 부분을 펼쳐 읽어주며 울먹이는 아들 덕에 이 마음도 사르르 녹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