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끼 Mar 29. 202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부끄러운 생애 

인간실격, 한번 즘은 다들 들어봤을 책이 아닌가 싶다. 그 기괴한 표지도 워낙 유명하다. 민음사 문학전집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인간실격'이라 하니 일본 소설 중 상실의 시대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구태여 읽지 않은 이유는 이걸 읽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많아서였다. 과몰입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나도 몇몇 분야에서는 과몰입을 하며 관심이 있다고 표하면서도 과몰입 하지 않는 지인을 보면 퍽 섭섭해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냥 '인간실격'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싫었나 보다. 

일본 소설 그 특유의 냄새가 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일본 소설이 '금각사'였는데 언뜻 비슷한 내용이어서 그런가 비슷한 냄새가 많이 났다. 이게 왜 제일 많이 팔렸는지 읽어보면 알 거 같다. 정말 재밌긴 하다. 술술 읽히고 심리 묘사에서 공감대도 많이 이끌어낸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요조의 일생을 보면서 공통점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잘 없겠지만 근본에 깔린 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을 거 같다. 후기에서 실제 작가의 충격적인 경험을 허구화했다는 것을 읽었다. 그리고 인간 실격 1회가 연재되고 얼마 안 있어 애인과 같이 물에 빠져 자살했다. 이런 온갖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여기에 미치는 사람이 안 나오고 배기겠는가

작중에서 요조가 자멸하는 원인을 정확히 집어주지 않는 점이 오히려 좋았다. 어린 시절 하녀와 머슴에게 당한 성적 학대가 원인이 되어 자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많지만 작중 요조가 밝혔듯이 가족에게 느끼는 이질감과 성격적 결함 등은 이전에도 있던 것이었고 스스로가 밝혔듯 가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나 가족에게 호소하기가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저 가만히 받아들인다. 선후관계가 잘못된 거 같다. 더욱 악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고 실제 정신의학적으로 그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요조 자신이 보기에는 그것이 원인은 아니었다. 

자신을 들키기 싫어서 성격적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 속마음을 들켰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나도 퍽 동감하는 부분이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말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게 이어져서 어른이 된 지금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늘 어려운 거 같다. 항상 몇 번 정도는 꼬는 습관이 있어서 우리 엄마조차도 내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시지 않는다. 항상 숨긴 의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말하는 것이 다 진심이라고 농담처럼 변명을 늘어놓지만 엄마가 역시 자식을 정확히 보지 않겠는가 싶다. 

어릴 적 눈치를 많이 보는 것도 상당히 닮았다. 물론 나는 어디서 비롯된 건지 모르겠으나 작은 것 하나도 손해 보기 싫어서 끝끝내 내 것을 지켜내는 것을 잘했으나 평소에는 눈치도 많이 보고 했던 거 같다. 나이가 들수록 능글맞아지고 어릴 때 같으면 눈치 보여서 못했던 행동도 서슴없이 한다. 성격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내면은 그대로인데 가면이 는 거 같기도 하다. 요조도 어른이 되면서 서슴없이 하는 행동이 늘어가는 걸 봐서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꼈다. 

다자이 오사무는 스물일곱에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여겼던 거 같다. 작중 요조가 스물일곱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겉모습은 마흔이 넘었다 표현한 걸로 봐서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담았다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스물일곱 참 좋은 숫자이다. 천재들은 항상 스물일곱에 죽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이상'도 스물일곱에 죽었고, 스물일곱에 죽는 것을 로망처럼 여기는 풍조가 20세기 초중반에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다자이 오사무도 그런 것에 여간 신경이 쓰였나 보다. 

타인에게 스스로가 광인처럼 여겨지는 것에 작중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 둘 다 상당히 충격받은 거 같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떠올랐다. 광기라는 것도 당대의 사회적 기준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 둘 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인생을 돌이켜보기 겁날 때가 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러려나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취해있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