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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Jun 05. 2022

피글리우치,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삶의 나침판

책을 소개해주는 영상에서 우연히 접하게  책이다. ‘명상록 통해 접한 스토아철학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고 과학자가  철학책이라는 점도 흥미를 동하게 했다. 하지만 구매를 망설이는 사이 절판이 되어버렸다. 어쩔  없이 e-book으로 보아야 했다. 일반적인 딱딱한 철학책과는  궤를 달리한다. 작가의 경험을 스토아 철학과  결부시켜 설명하기에 부드럽게 읽을  있다. 에픽테토스라는 선생을 설정하여 사고를 이어 나가는 것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그렇게 특정 인물을 머릿속에 떠올려 대화하는 형식으로 사고를 전개해  경험이 많아 친근감이 들었다.



책의 시작을 ‘곧은 오솔길은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라는 신곡의 대목을 인용한 것도 퍽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 ‘가지 않은 길’을 오랜만에 떠올려 볼 수도 있었으며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내가 철학에 참작하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몇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최선일까? 나름 그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찾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여전히 확신이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스토아 철학에 능통하다고 해서 그런 질문들이 매끄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보게 해준 거 같다. 구체적으로 인간은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잘 살 수 없다는 점을, 잘 죽는 것이란 결국 고결함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추론해내었다.



스토아 철학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통제의 이분법일 것이다.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그 외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신경을 끄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이 보기에 건강, 권력, 재산 등은 모두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안의 덕성과 성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으니 그런 것들에 신경을 기울이며 살 것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사뭇 체념적인 삶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으나 비유컨대 수레에 목줄이 메여서 가는 개가 억지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한다면 질질 끌려가겠으나 수레가 가는 길로 맞춰서 간다면 여유롭게 풍경 구경도 하면서 가지 않겠느냐 하는 요지이다. 니체의 운명애 사상도 많이 생각이 났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것도 스토아 철학에서 기억이 남는 부분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내 본성에 따라 행동하라, 자연의 섭리라는 것은 세상 만물이 흘러가는 법칙이다. 그건 그냥 알기가 힘들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조심스럽게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내 본성도 마찬가지다. 내 욕망이 내 본성이 아니다. 진정 나의 이성을 다듬어서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과녁의 실제 명중은 결심은 하되 욕구될 일은 아니다’



고결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이번 기회로 공고해졌다. ‘고결성’이란 내가 무엇보다 사랑해 마지 않던 개념이다. 내가 하지 못할 것을 염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고결성만 떠올리면 다른 것은 하찮아질 정도로 그 개념 앞에 바짝 엎드렸다. 그 고결성이 고귀한 삶을 만들어주리라는 대목은 무척이나 위로되었다. 정의란 말을 타인을 존엄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으로 이해한 점은 사뭇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항상 타인을 존엄하게 대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남겼다. 이미 ‘명상록’에서도 학습한 개념이지만 우리의 감정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인 인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비열하고 비겁한 정신의 원천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이지 않은가? 우리의 고결함을 방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죽음조차도 결국 인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에서 가장 실생활에 많이 적용될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하루 그대가 한 일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짚어 보기 전까지는 그대의 연약한 눈꺼풀에게 잠을 허용하지 마세요.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남겨 두었나? 그렇게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당신의 행위들을 검토하세요, 그러면서 수치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꾸짖고, 선한 일들에 대해서는 기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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